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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사당의 침묵

안소민은 작은 뜰로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김서준이 건넸던 장신구를 하나하나 꺼내 정리했다. 곧 전당포에 가서 은전으로 바꾸어 박서희에게 남겨 두려 했다. 머리비녀든 팔찌든 하나같이 정교하고 화려했다. 한때 김서준이 손수 머리카락에 꽂아 주고 손목에 채워 주던 것들이었으나 이제는 끝마다 가시가 돋은 듯 손끝을 찌르고 아렸다. 이튿날, 상자를 들고 문을 나서던 찰나, 안소민은 안지연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멈춰라.” 안지연의 시선이 곧바로 상자로 꽂혔고 안색이 사나워졌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안소민이 대답할 틈도 없이 안지연이 상자 뚜껑을 홱 열었다. 안에 든 물건들이 드러나자, 안지연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굳었다. “좋구나, 안소민. 감히 내 물건을 훔치다니!” 안지연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손목을 거칠게 틀어잡았다. “여봐라! 이 도둑놈을 당장 사당으로 끌고 가라!” “저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안소민이 몸부림치며 겨우 말했다. “전부 저의 물건입니다!” 하지만 안지연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하인들을 시켜 안소민을 반쯤 끌고 사당으로 데려갔다. 곧 집안의 어르신들이 소란을 듣고 모여들었다. “아버지!” 안지연이 상자 속 보석을 가리키며 날을 세웠다. “이것들은 황실에서 하사한 물건입니다. 서녀인 소민이가 어디서 이런 것을 얻겠습니까? 분명 제 물건을 훔쳤습니다!” 안국공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민아, 이 물건들이 어디에서 난 것이냐?” 안소민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 판단을 내려 주십시오. 이건 모두 저의 소지품입니다. 훔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거짓말을 하느냐.” 안지연은 차갑게 웃으며 비단 상자 몇 개를 가져오게 했다. “보아라. 저하는 나한테 이런 상자를 하사하셨다. 모양과 장식이 상자 속 것들과 한 치 다르지 않다!” 그러자 안소민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왜 같을 수밖에 없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김서준이 한 번에 장만하여 하나는 드러내어 안지연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몰래 안소민에게 건넸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발뺌하겠느냐?” 안지연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문 법도로는 도둑질한 자의 손과 발을 꺾고 내쫓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안소민은 떨리는 숨을 고르며 되풀이할 뿐이었다. “저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세자저하를 모셔 오너라!” 안지연이 높이 외쳤다. “동궁의 물건인지 저하께서 직접 살피시게 하라!” 그 말을 듣자 안소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김서준이 이곳에 오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저지할 겨를도 없이, 잠시 뒤 김서준이 도착했다. 보름달 같은 옷차림에 흠잡을 데 없는 용모, 그러나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전하.” 안지연이 다정스레 팔을 끼며 나섰다. “부디 살펴 주세요. 이 물건들이 동궁의 것이 맞습니까?” 김서준의 시선이 바닥에 흩어진 장신구들을 차갑게 훑고 지나갔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동궁의 물건이로다.” “들었느냐, 안소민!” 안지연이 돌아서며 분노를 터뜨렸다. “증거가 분명한데 무슨 변명이 하는 거냐!” 안소민은 차디찬 돌바닥 위에서 고개를 들어 김서준을 올려다보았다. 한때 온기가 스치던 김서준의 눈동자는 지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안소민은 입술이 떨렸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다만 눈빛으로 간절히 애원했다. ‘단 한마디면 됩니다. 저하, 그 한마디면 저를 이 불구덩이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서준은 무심히 한 번 쳐다보고는 곧 시선을 거두었다. 마치 상관없는 낯선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자 안지연이 재촉했다. “저하, 안소민에게 이런 물건을 하사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김서준의 얇은 입술이 가볍게 열렸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없다.” 두 글자가 칼날이 되어 안소민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안소민은 피가 가시는 듯 온몸이 싸늘해졌고 그제야 사실을 알아차렸다. 안지연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김서준은 안소민의 생사쯤은 정말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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