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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하선우와 민설아는 군인 아파트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였다. 하선우는 민설아를 끝도 없이 아꼈다. 한겨울만 되면 민설아의 차가운 발을 품 안에 넣어 따뜻하게 데워 주고는 했고, 민설아는 그런 하선우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민설아는 매일 난로 위에 하선우가 좋아하는 재스민차를 끓여 주었다. 모든 게 변한 건 하선우의 형, 하준성이 임무 도중 전사하고 난 뒤였다. 결혼한 지 고작 석 달이었던 형수 강서진만 홀로 남았다. 하씨 가문은 하선우에게 하준성 대신 강서진과 가문의 대를 잇는 아이를 남기라며 강요했다. 하지만 하선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는 평생 설아 하나만 사랑합니다. 다른 여자는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 말에 하씨 가문은 가문 법도를 들이대며 하선우를 매다시피 끌고 갔다. 아흔아홉 대의 채찍질이 하선우의 등을 갈라놓았고, 하선우는 사흘 밤낮을 하씨 가문 사당에 갇혔다. 피범벅이 된 채 푸른 돌바닥에 무릎 꿇고서도, 하선우의 대답은 여전했다. “하선우는 평생 민설아만 원합니다.” 그 말에 민설아는 엉엉 울었다. ‘이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민설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선우의 생일이 되었다. 민설아는 병원에서 갓 받은 임신 확인서를 꼭 쥔 채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침실 문틈 사이로 보인 건, 하선우가 강서진을 침대에 짓누른 채 거칠게 몸을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선우 씨, 조금만 살살해요...” 강서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요. 너무... 조여요.” 하선우의 목소리는 낮게 갈라져 있었고 움직임도 더 거칠어졌다. 민설아의 손에서 진단서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리는 시야로 침대 위를 보니, 강서진의 하얀 다리는 하선우의 허리에 감겨 있었고 얼굴에는 고통과 쾌감이 뒤섞인 표정이 가득했다. “쾅!” 뒷걸음질 치던 민설아가 발치의 쓰레기통을 차 버렸다.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고 하선우는 안색이 확 변했다. “설아야!” 민설아는 말도 없이 뒤돌아 뛰었다. 눈물이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민설아는 하선우가 허둥지둥 침대에서 내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강서진의 놀란 울음소리까지 뒤섞여 들렸다. 아파트 마당으로 달려 나오자마자 거대한 팔이 뒤에서 민설아를 꽉 끌어안았다. “설아야, 내 말 좀 들어!” 하선우의 뜨거운 가슴이 민설아의 등에 닿았다. “오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민설아는 손톱이 하선우의 팔을 깊게 파고들 만큼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당장 놔!” “집안 사람들이 내 술에 약을 탔어!” 하선우가 억지로 민설아의 어깨를 돌려 눈을 맞추게 했다. “그날 술에 취해 있었는데... 집안에서 강서진을 내 방으로 밀어 넣은 거야.” 하선우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고 눈동자엔 핏줄이 가득했다. “일이 끝나고 난 강서진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는데 형수님이 무릎 꿇고 울면서... 아이 하나만 낳게 해 달라고 빌었어.” 민설아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래서 내가 없을 때마다... 둘이 몰래 만난 거야?” 하선우는 눈을 감았다. “대신 죽게 둘 수는 없잖아. 한 번 실수한 이상...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임신시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그러면 다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이 크게 흔들렸다. 군인 아파트 전체가 뒤흔들리며 비명이 가득 쏟아졌다. “지진이다! 빨리 나가!” 하선우는 본능적으로 민설아를 감싸안았다. 하지만 그때, 집 안에서 강서진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선우 씨, 도와줘요! 피가... 임신한 것처럼 배가 너무 아파요!” 그 말에 하선우의 몸이 굳어 버렸다. 같은 순간, 민설아도 아랫배에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하선우의 소매를 붙잡았다. “나도... 배가...” 하지만 하선우는 민설아의 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 민설아를 밀치듯 떼어내고 하선우는 바로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민설아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머리 위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붕에서 큼직한 들보가 곧장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강한 충격과 함께 세상이 새까맣게 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하 대령님, 여성 군인 두 명이 잔해에 깔렸습니다. 이제 여진이 올 텐데 지금은 한 명밖에 못 구합니다! 먼저 누구부터 구해야 합니까?” “강서진부터 구해. 임신했다고 했어!” 하선우의 대답은 비수처럼 민설아의 가슴을 깊게 찔러 들어왔다. ... 정신을 차렸을 때, 민설아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민설아는 아랫배가 무겁게 아팠다. 그때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말했다. “민설아 씨, 오셨을 때는 이미 출혈이 너무 심했어요. 죄송하지만 아이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민설아가 그토록 원하던 아이였다. 하선우의 생일날에 알려주려고 민설아가 알차게 준비했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아이는 아무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간호사가 문을 닫고 나가자, 병실은 의료기기가 작동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얼마 후 문이 열리고, 하선우가 군복도 제대로 여미지 못한 채 뛰어 들어왔다. 하선우의 눈은 충혈돼 있었고, 며칠째 잠도 못 잔 얼굴이었다. “설아야, 몸은 좀 어때?” 하지만 민설아는 하선우를 보지도 않았다. 민설아는 천장을 바라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서진은? 아이는... 괜찮대?” 하선우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대답했다. “오해였어. 임신이 아니래. 겁이 나서 착각한 거래...” 그 말에 민설아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눈물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하선우는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를 구하려고 자기 아내와 진짜 아이를 버렸다. “설아야, 그러지 마.” 하선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지만, 민설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멈췄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 미안해. 제발 화 좀 풀어.” 민설아는 창밖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난 아이를 잃었는데... 무사하다고?’ 그렇지만 대답하려던 순간, 간호사가 문을 두드렸다. “하 대령님, 강서진 씨가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계속 대령님을 찾습니다.” 그러자 하선우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가 서서히 내려왔다. “설아야, 조금 푹 쉬어. 형수님이 많이 놀랐어. 잠깐 가볼게. 괜히 오해하지 마. 나는 강서진한테 아무 감정 없어. 그냥 빨리 임신시키려는 것뿐이야.” 문이 닫히고 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 민설아는 마침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삼켰다. 그 며칠 동안 하선우는 강서진의 병실에만 붙어 있었다. 간호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하 대령님은 정말 강서진 씨를 극진하게 보살펴 주시더라.” 그러나 정작 하선우의 진짜 아내는 바로 옆 병실에서, 방금 아이를 잃은 채 홀로 누워 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 퇴원 날, 민설아는 조용히 짐을 챙겨 가정법원으로 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직원이 묻자 민설아는 준비해 온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재판 이혼을 신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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