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나는 그녀의 엉터리 변명을 듣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에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비웃더니, 도대체 우리 중에 누가 진짜 사랑에 눈이 멀었어? 이렇게 좋은 특종 기사를 놔두고, 그 허수아비 같은 남자 친구를 지키는 거야? 저런 학력을 가진 사람을... 너 전민지 같은 엘리트가 빠져들 줄이야.”
“윤세영!”
전민지는 체면이 구겨지는 듯 내 말을 단칼에 끊었다.
“어쨌든 이 뉴스는 우리가 안 하기로 했어! 꼭 하고 싶으면 회사 그만두고 다른 데 가서 해. 하지만 네 그 학력으로 다른 회사 뉴스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말을 마치자 그녀는 나를 노려본 후 자기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문득 평소에 늘 하이힐을 신던 전민지가 오늘은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보니 그런 생각까지 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마음을 다잡고 번역을 시작했다.
해가 지고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 모두 퇴근할 때까지도 나는 번역을 반도 끝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자리에 앉아 야근을 이어갔다.
원래 일에 항상 열정적이었던 전민지도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나는 남자를 감싸기 위해 그녀가 직권을 남용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때 한 젊은 남자가 밖에서 들어오더니 주변은 둘러보지도 않은 채 곧바로 본부장 사무실로 향했다.
나는 처음에 우리 회사 다른 부서 직원인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민지의 사무실에서 싸움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어서 사무실에서 나온 그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떠나버렸다.
어제 검색했던 서기훈의 사진이 생각났다. 방금 그 남자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스친 나는 서둘러 전민지의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전민지가 한 손으로 책상을 짚은 채 다른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 왜 그래?”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간신히 들릴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병원에... 데려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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