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어머님, 저는 괜찮으니 울지 마세요.”
내 말을 듣고 우혁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괜찮다니. 운이 좋아서 목숨을 부지했을 뿐이오.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면서 남을 구하려 하다니. 어찌 이리도 어리석은지 원.”
나는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왜 내가 혁수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야?’
하지만 심선화를 대신해 막은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억울해하는 나를 쳐다보며 우혁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하거라. 청옥이 다쳤으니 당분간 휴식을 취해야 해. 내가 죽 끓여 올 테니 청옥은 쉬고 있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진혜영이 자리를 비우자, 방에는 갑자기 나와 우혁수만 남게 되었다.
그를 상대하기 싫어서 나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마른 체형인 내가 얼굴이 창백해진 채 누워 입은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는지 우혁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직도 아픈 것이오?”
걱정이 담긴 우혁수의 말이 위선적으로 들렸다.
“아프든 말든 서방님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을 내가 차갑게 맞받아치자,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진 우혁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 역시 그런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시선을 어깨의 상처로 향했다.
‘아, 또 며칠 누워있어야 하네.’
해시가 되었을 때, 내 아버지인 영국공과 어머니인 국공 부인이 찾아왔다.
“아이고! 우리 청옥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느냐! 네가 만약 무슨 변고라도 생겼다면 우리는 어찌 살라고... 흑흑...”
내 손을 잡고 흐느끼는 국공 부인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태어났다 해도 이 두 사람을 잃고 싶지 않으나 난 친딸이 아니니...’
“어머니,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국공 부인의 손을 내 얼굴에 대고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연주가 돌아오기 전까지 국공 부인이 나에 대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더 느끼고 싶어서.
“그래도 다음부터는 절대 그리 무모하게 굴지 마라. 네 어미와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느냐?”
영국공은 엄숙한 얼굴을 한 채 말했으나 그 눈빛에는 애틋함이 담겨있었다.
이에 나는 방긋 웃으며 답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절대로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그제야 영국공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래, 아픈 것은 어떠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니 하나도 안 아픕니다.”
“아부를 떨기 좋아하는 건 여전하구나.”
“헤헤... 그것이 제 특기이지 않습니까.”
혼인한 지 3년 만에 우혁수는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내 웃음을 보게 되었다.
‘웃음이 이리도 자연스러울 수가.’
내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영국공과 국공 부인은 자리를 떴다.
우혁수가 두 사람을 배웅하러 나가자, 방은 순식간에 다시 조용해졌다.
나도 지쳐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있을 때 누군가 찾아왔다.
“마님, 유정 아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라 하라.”
전생에서도 병이 좀 나은 위유정이 나를 보러 왔었다.
다만 전생에서는 그녀가 병문안이 아니라 도발하러 온 것이어서 나는 아픔을 참으며 상태가 좀 좋아진 그녀를 때렸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중태에 빠지고 말았다.
비록 우혁수가 나를 어찌하지는 못했으나 그 후로 나를 대해는 태도가 더 차가워졌다.
나도 이 일로 위유정에게 앙심을 품고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형님을 뵙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몸이 안 좋다 보니 문안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니 저를 원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돌려 위유정을 바라보니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했다.
마치 내가 괴롭히기라도 한 것처럼.
우혁수가 아니더라도 나는 위유정이 싫었다.
“몸이 안 좋으면서 이리 와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원망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내 말에 위유정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고마움은 오히려 제가 해야 합니다. 오라버니가 저를 저택에 지내게 하면서 병 치료하게 해주셨으니, 형님의 병문안을 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지요.”
‘저택에서 지내라고 혁수가 유정에게 말했단 말인가?’
그때, 다정이 약을 들고 들어왔다.
“마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위유정이 다가와서 나를 부축해 일으켜 앉혔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녀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또 등받이를 가져다가 내게 받쳐 주는 세심함을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오라버니를 도와 형님의 시중을 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말을 마치고 위유정은 약을 들고 있는 다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가 형님께 약을 먹이시면 안 될까요? 오해는 마세요. 오라버니께서 저를 거두어주시고 치료받게 해주셨으니, 저도 오라버니의 부담을 덜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나는 차갑게 웃었다.
‘혁수의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알려주려는 건가?’
“하면 그리하세요. 다정아, 약을 아가씨에게 드리거라.”
다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약을 위유정에게 건넸다.
나의 침착한 모습을 보고 위유정은 살짝 놀랐으나 아주 천천히 약을 먹여주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빠른 걸음으로 방에 들어온 우혁수가 이 모습을 보고는 어리둥절해했다.
나와 위유정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한 눈빛이었다.
내가 약을 다 마시자, 다정이 서둘러 약과를 건넸다.
위유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두 분 얘기 나누세요.”
위유정이 떠나고 나서 나는 고개를 돌려 우혁수를 쳐다보았다.
“왜요? 제가 서방님의 사촌 누이동생을 해하기라도 할까 봐 두려우신 겁니까?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냐 말입니다.”
내 말이 옳다는 듯한 우혁수의 표정을 보며 나는 손으로 코를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터이니 더 이상 얘기하지 말아야겠다.’
“부인과 유정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니 참으로 기분이 좋구려. 몸은 좀 어떻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에서 사용하는 약들이라 그런지 몸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내일이면 일어나 걸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우혁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나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삐죽였다.
‘사촌 누이동생이 아니라면 오지도 않았겠지.’
다행인 것은 이제 나는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았다.
“부인, 선화 아씨께서 문안 오셨습니다. 선물도 많이 가져오셨고요.”
내가 고개를 돌려 보니, 붉은 옷을 입은 심선화가 걸어오고 있었다.
철천지원수로 지내면서 서로를 헐뜯는 말을 많이 했었는데 이리 마주하고 있으니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험... 그게... 지난번에 날 구해줘서 참으로 고마웠다. 내가 기를 보충하는 음식을 가져왔어. 몸은 좀 괜찮냐?”
심선화가 먼저 한마디 내뱉으며 침묵을 깨뜨리자, 나는 피식 웃었다.
“괜찮으니 걱정 붙들어 매라.”
심선화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데 왜 날 구한 거야? 우리가... 사이도 안 좋잖아. 그날 네가 한 말... 내게 진 빚을 퉁 치겠다는 말은 무슨 뜻인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 뜻도 아니야. 그저 네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너와 벗이 되고 싶었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심선화의 손이 내 어깨에 올려졌다.
“그래. 네가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너는 이제부터 내 소중한 벗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거라. 내 기꺼이 도와주겠다.”
“지금 일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