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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심선화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더냐? 염려 말거라. 내 힘이 미치는 한 반드시 최선을 다할 테니.” 나는 어깨를 가리키며 웃었다. “손 거두거라. 상처 입은 곳이 어깨라 몹시 아프구나.” 심선화가 잠시 멈칫하더니 민망한 듯 웃으며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미안하구나, 잠시 흥분해 그리한 줄도 몰랐구나.” 나는 그녀의 호방한 성격을 알기에 개의치 않았다. “괜찮다. 이제 많이 나아 크게 아프지는 않으니.” “그것 참 다행이구나. 상처가 낫거든 어디 함께 놀러나 가자꾸나.” “그래.” 내 안부를 확인한 심선화는 돌아갔고 그 뒤로 나는 며칠간 조용히 상처를 돌보았다. 곧 상처가 회복되었다. 내가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심선화는 사람을 보내어 함께 연화호 유람에 나섰다. 오늘은 호수 유람 축제날, 하늘은 청명하고 도성의 연화호는 인파로 북적였다. 혼인 전에는 해마다 이곳에 왔으나 혼인 후에는 시할머니께서 ‘여인이 시집가서 함부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집안 망신’이라 늘 이른 탓에 나서지 않았다. 호수 위 가득한 배들과 곳곳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흥청거리는 풍경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랜만에 이렇게 성대한 광경을 보는구나.’ 이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배를 향했다. 내가 심선화와 같은 배에 올랐다는 사실에 놀란 듯하였다. 멀리 작은 배 위에서는 황영애와 서정연 또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에 내가 일러둔 말을 기억하는지 감히 다가와 친한 체하지는 못하였다. 심선화가 웃으며 말했다. “보거라. 네가 몇 해 나오지 않는 사이, 우리 성창국은 더욱 번창하였다. 예전보다 훨씬 성대하지 않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그러하구나.” 그때, 호수 가득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우혁수와 심계민, 그리고 송주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과연 그들의 무리가 보였다. 뜻밖에도 위유정 또한 그 일행에 섞여 있었다. 더구나 그들이 향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탄 배였다. 심선화도 우혁수 뒤를 따르는 위유정을 보았다. 예전에 우씨 저택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그녀가 소청옥의 뜰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일이 있던 것이다. 또한 위유정이 우혁수의 사촌 동생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내가 우혁수 쪽을 바라보자 심선화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억지로 꺾은 열매는 단맛이 없느니라. 열매를 먹고 싶거든, 스스로 단 것을 찾아야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는 탐이 나서 꺾었을 뿐이다. 단지 안 단지 생각도 안 하였지. 누가 알았겠느냐? 까보니 이렇게 쓰디쓸 줄.” “쓰긴 뭐가 쓰다는 것이냐?” 다가온 송주림이 내 말을 들었는지 의아해하며 물었다. 심선화가 눈을 흘기며 꾸짖었다. “알 바 아니지 않습니까? 한데 어찌 그리 꾸물거리며 늦게 오세요? 저희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우혁수는 눈짓으로 소청옥을 살폈다. 바보가 아닌지라 그녀가 말한 ‘쓰디쓴 과일’이 바로 자신을 두고 한 말임을 알아챘다. ‘감히 어찌 그런 말을... 멀쩡한 나를 억지로 꺾어놓고서는 이제 와서 내 탓을 하는 격이 아닌가.’ 우혁수의 낯빛이 싸늘해졌다. “아까 저희도 함께 나서려 했으나 뜰에 계시지 않으시더라고요. 이미 먼저 나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위유정을 흘끗 보았다. 분명히 이는 우혁수와 함께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꼼수에 놀아날 이가 아니었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심선화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제가 아침에 일찍이 청옥이를 불렀습니다. 저희 탓이 아니라 늦게 온 여러분들 탓이라 이 말이에요. 자, 다 모였으니 이제 배를 띄웁시다.” 심선화가 친근히 부르는 소리에 일행이 조금 놀라는 기색이었다. ‘검을 막아준 인연으로 두 사람이 뜻밖의 벗이 된 모양이군.’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우 대인께서도 유람을 나온 것이오?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로군.” “그러게 말이오. 이리 모두 함께 나왔으니 차라리 동행함이 어떻겠소?” “우 대인, 괜찮으시겠소?” 이때 다가온 이는 태자 공윤겸, 한성왕 공태우, 그리고 효문왕 공지명이었다.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서둘러 예를 올렸다. 거절할 수 없는 일이니 모두가 함께 유람을 하게 되었다. “태자 전하, 한성왕 전하, 효문왕 전하와 더불어 유람을 함께할 수 있다니 더없는 영광입니다. 다만 배가 협소하오니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괘념치 마시오. 이제 가세. 어쩌다 우 대인과 심 장군, 송 공자까지 함께하는데 오늘은 마땅히 흥겹게 놀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모두 인중의 봉황이라 불릴 만한 이들, 풍채가 수려하고 기개가 빛나는 사내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여인들의 시선은 죄다 그들에게 쏠렸다. 사내들은 담소를 나누었고 여인들에게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하여 나는 그저 갑판으로 나아가 호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공연을 바라보았다. 공연을 보던 중, 문득 마음이 멍해졌다. 황제의 옥체가 위태롭고 조정은 흔들리는 이때, 우혁수는 권세가 높고 성상의 총애까지 받고 있었다. 더구나 영국공부와도 얽혀 있었다. 태자와 여러 황자들 사이에서 늘 중립을 지켜왔지만 그 때문에 도리어 서로가 다투어 그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나는 의심했다. 전생에 우혁수가 거듭 자객의 습격을 받은 것 또한 바로 이들 때문이었으리라고.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우혁수가 자신들의 적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위협을 없애려 했던 것이리라. “형님.” 위유정이 다가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배의 다른 쪽을 바라보니 태자 공윤겸이 심선화에게 채찍을 선물한다는 핑계로 그녀를 불러내었다. 태자의 태도는 분명 심선화에게 마음을 보이는 듯하였다. 영국 장군의 적녀인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태자는 날개를 단 격이 될 터였다. 배 안의 공태우와 공지명의 얼굴빛은 좋지 않았다. 태자가 이런 수를 쓰리라 생각지 못한 듯했다. 심선화가 나를 향해 손짓하여 부르기에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발아래 있던 나무막대기를 밟는 순간 몸이 미끄러져 호수로 곤두박질쳤다. “아아! 형님!” 첨벙! 첨벙! “큰일 났어요.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계속해서 가라앉으며 허우적대는 사이, 나는 우혁수가 물에 뛰어들어 위유정 쪽으로 헤엄쳐 가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이 더는 아프지 않으리라 여겼건만 그 순간 또다시 가슴이 저려왔다. 저 사람이 바로 전생에 내가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자가 아닌가. 나는 하연주보다도 못하고 위유정보다도 못하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내게 허락된 자리조차 없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한 그 순간, 커다란 손이 나를 움켜잡아 끌어올렸다. 숨이 붙은 채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듯했으나 목구멍에 물이 차올라 괴로웠다. “켁, 켁켁...” 기침을 하는 중, 눈에 들어온 것은 댕강 부러져 반 토막만 남은 노였다. 배에 노가 있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내가 나오기 전에는 분명 보이지 않았었다. 혹여 배가 흔들리며 굴러왔을 수도 있겠으나 과연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물에 빠지기 전, 나는 분명 옆 난간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위유정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그녀를 붙잡으며 함께 빠진 것이었다. 나는 싸늘한 시선을 위유정에게로 보냈다. 그녀를 건드린 적 없건만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그녀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 또한 가만있지 않으리라. “청옥아, 괜찮느냐? 어찌 갑자기 물에 빠진 것이냐? 놀라 자빠질 뻔했다. 다행히 우리 큰 오라버니께서 수영을 잘하셔서 망정이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선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괜찮다. 건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어요.” 심계민이 급히 겉옷을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별것 아니니 감사해할 것 없습니다. 옷이 물에 젖었으니 제 외투를 걸치세요. 두터우니 젖어도 속까지 스미지 않습니다. 그런대로 걸치시지요.” “그런대로라뇨. 오히려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우혁수는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나섰다. “부인이 물에 빠졌으니 먼저 데려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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