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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내가 도착했을 때, 말경기가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올 거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는지 사람들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긴 나와 심선화가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소청옥, 네가 어찌 온 것이냐? 너... 선화를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나는 말투가 부자연스러운 공부상서의 딸인 황영애와 이쪽으로 다가오려던 호부상서의 딸 서정연을 바라보았다. 내 벗이었던 두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줄곧 심선화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심선화가 야만적이라서 그녀가 조직한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이들은 종종 내게 말하곤 했었다. 난 이 말을 듣고 심선화를 더 싫어하게 되었으나 이들이 그녀와 한통속이란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게. 어떻게 오게 된 것이야?” 서정연도 다가오며 물었다. 이에 나는 그저 담담하게 미소만 지을 뿐 두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선화에게 아첨하는 것도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벗을 잘못 둔 내 탓이라고 할 수밖에.’ “그냥 심심해서.” 내가 화내지 않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를 에워쌌다. “선화가 얼마나 괘씸한지 너는 모르지? 너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우리를 맨 뒤에 서 있게 했단 말이야. 이건 널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어.” “그래, 우리 이대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선화가 주최하는 그깟 말경기는 안 봐도 돼.” “너희들이 지금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나의 차가운 말에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으나 나는 이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앞자리 쪽으로 걸어갔다. 좌석은 말경기장 둘레에 깔려 있었는데 말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은 도성의 규수들과 귀공자들이었다. 하루 종일 저택에만 있다 보니 지루해서 이들은 이렇게 가끔 행사를 열어 지루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내가 앞쪽에 있던 빈자리에 도착해서 앉아도 되냐고 물으려고 하던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빈자리의 옆에 앉아 있던 사내가 우혁수의 벗이자 심선화의 오라비인 심계민었던 것. 전생에서 나는 심선화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심계민도 싫어했다. 물론 이번 생에서도 여전히 그를 싫어했지만. 빈자리가 왜 두 개인지 나는 이해가 되었다. ‘보아하니 이 두 자리는 혁수와 또 한 명의 친한 벗을 위해 남겨둔 것이군.’ 이 세 사람은 나이가 비슷했다. 비록 일할 때는 바쁘다 보니 서로를 모르는 척했으나 사적으로는 아무 말이나 다 하는 친한 벗이었으니. 내가 멈칫하는 것을 보고 군인의 자질을 갖춘 심계민이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앉으십시오, 우 부인. 제가 옆자리를 하나 더 비우면 됩니다.” 이에 나는 두 손을 포개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심 장군. 저는 빈 좌석이 있는 저쪽에 가서 앉으면 됩니다.” 말을 마친 내가 몸을 돌려 맞은편의 빈 좌석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으나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준수하게 생긴 소녀가 황급히 달려오더니 그 좌석에 앉아버렸다.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항했다. “...” 그 좌석의 옆에 있던 사람이 그 소녀에게 무언가를 말하자, 그 소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덜덜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 우 부인, 앉으십시오.” 시집갔기에 지아비의 성을 따라야 했으나 나는 ‘우 부인’이라는 호칭을 매우 싫어했다. “그래, 고맙구나. 한데 앞으로는 나를 청옥 누님이라고 부르거라.” 나성호, 어사대부의 아들이었던 이 소녀에 대해 수줍음이 많다는 것 외에는 나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청옥 누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나성호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양보한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이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냐?” 승마 복장을 하고 이마를 드러낸 절세 미모의 심선화가 명품 말을 탄 채 경기장 한가운데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초대장을 보냈으면서.” 그러자 심선화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난 그저 형식적으로 보냈을 뿐인데.” “나도 형식적으로 온 것이야.” 사실 나는 심선화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내가 절망했을 때, 유일하게 내게 희망을 준 사람이었으니. 그리고 또 하나, 그녀와 친한 벗이 되기 위해서. 두 번째의 삶을 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하고 어떤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심선화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긴 전생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체면을 차려준 적이 없었으니 놀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녀는 어이없어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누군가의 부름에 말머리를 돌렸다. 말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에서 위풍당당한 기세를 떨치는 심선화를 바라보며 나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면 나도 저리 활개 치며 다닐 수 있을까?’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경기장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서 고개를 들어 보니, 우혁수와 그의 벗인 남국공의 아들 송주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 귀공자가 한자리에 모이자, 혼이 쏙 나간 여인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송주림과 심계민은 용모가 뛰어난 데다가 신분까지 좋아서 도성의 두 꽃으로 불렸다. 장원급제하여 도성에 온 우혁수도 뛰어난 용모와 기질, 그리고 능력 덕분에 꽃으로 불리게 되었고. 도성의 여인들은 송주림, 심계민보다 우혁수를 더 흠모했다. 심계민이 내 쪽을 가리키자, 우혁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는 흰옷을 입은 채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나는 우혁수를 향하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 말경기 하는 것을 봤다. 말경기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으나 나는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우혁수의 일행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으나 나는 시선을 그들에게 아닌 경기장에서 말을 타는 심선화에게 향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화야, 내도 한번 타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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