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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맞은편 굳게 닫힌 문을 보고 살짝 불편해서 우혁수는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심선화도 확신에 찬 눈빛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정말로 미쳤네요.” 나는 살짝 긴장한 나성호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괜찮으니 안심하고 마음껏 먹으려무나.” 우혁수는 나성호의 아버지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으니, 나성호가 우혁수를 두려워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혁수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당연히 나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겠지. 질투 때문에 남을 해치는 일은 더욱 없을 테고.’ 나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는 내 자신에게 술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영국공의 딸로서 나는 가끔 아버지를 따라 궁중 연회에 참석해서 술을 마시곤 했었다. 만취하여 추태 부리는 것을 피하고자 어릴 적부터 주량도 늘려왔고. 나성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술을 많이 마시고 있던 나를 바라보았다. ‘새 삶을 살고 있기에 기분 좋아서 마시고 있다는 걸 성호는 당연히 모르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체면 차리지 말고, 많이 먹으려무나. 모자라면 더 시키면 되니.” “예, 잘 먹겠습니다.” 간만에 자유를 맛봐서 그런지 나는 참지 못하고 술을 몇 잔을 더 마셨다. 머리가 좀 어지러웠으나 그래도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을 나서자, 마침 다 먹고 나오는 우혁수 일행들과 마주쳤다. ‘오늘 참 재수가 없네. 왜 계속 이리 마주치는 거야.’ 우혁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평소와 달리 아름답게 치장해서 이리 쳐다보는 건가? 취기까지 더해져서 그의 욕구를 자극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함께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 우혁수는 자신이 타고 온 마차를 가리키며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마차를 타고 오지 않은 나로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예, 서방님.” 우혁수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먼저 1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우혁수의 뒤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부인,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비록 우리 사이에 정분이 없다고는 하나 이혼하기 전까지는 외간 사내와 집적거리는 것을 삼가시오.” 말을 마친 우혁수가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을 보고 나도 입술을 오므린 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송주림이 콧방귀를 뀌며 말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이 소청옥은 참으로 문란하군. 어찌 혼인까지 했으면서 외간 사내를 대동한 채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수 있는지. 감히 혁수 앞에서 감히 바람을 피우다니. 그러고 보면 혁수는 참 너그러워. 나 같았으면 바로 소청옥과 저 사내를 때려죽였을 것인데.” 송주림의 말에 심선화가 토를 달았다. “출가하지 않았는데 왜 거리를 활보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얼어 죽을 바람은 무슨. 몰래 한 것도 아니고 지아비의 앞에서 대놓고 했는데.” “선화야, 너 소청옥과 원수지간이면서 왜 그녀의 편을 드는 것이야?” 이에 심선화가 반박했다.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나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맞는 말이야. 시집갔다고 해서 저택에만 붙어있으라는 법은 없지. 앞으로도 내 의지대로 살 것이야.’ “되었으니 그만하거라, 주림아. 우 부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저 두 사람은 그냥 밥만 먹었을 뿐이야.” 심계민이 중간에서 말렸다. 내가 우혁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심계민과 도성의 모든 귀족은 잘 알고 있었다. 마차에 오른 후, 약간 취기가 있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나는 마차 벽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내가 안 자고 있다는 것을 우혁수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그때, 마차가 갑자기 급하게 멈춰선 탓에 나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그만 우혁수와 부딪치고 말았다. 입술에 전해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마차의 흔들림으로 우혁수도 나의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의 촉감을 선명하게 느낀 듯했다. ‘스스로 몸과 마음이 깨끗하다고 자부하던 그가 나 때문에 욕구가 생겼을 리 없지. 하기야 내게 모욕당한 것은 물론 아버지와 오라버니에 의해 조정에서 망신까지 당했던 그가 아닌가.’ 우혁수가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밀치더니 조롱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난 부인이 정말로 이혼을 원하는 줄 알았소. 이제 보니 밀당 놀이었구려.” “하! 이혼장이나 주세요. 바로 떠나겠습니다.” 해명하는 것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우혁수의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 “나를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나는 비꼬는 투로 말했다. “솔직히 줄 용기가 없지 않습니까.” 마차가 우씨 저택에 도착하자, 술을 좀 마셔서 졸렸던 나는 안색이 어두워져 있던 우혁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 3년 동안 그를 세심히 보살폈음에도 냉대를 받아서 나는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상태였다. 처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나는 하품을 하고 나서 곧바로 잠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다정과 다영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서로를 바라보았으나 다행히 이 두 사람은 예전보다 지금의 나를 훨씬 더 좋아했다. 진혜영이 다음 날 정오까지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청옥아, 오늘은 왜 할머니께 문안드리러 가지 않고 아직도 자는 것이냐? 혹 어디 아픈 거냐?” 우혁수 할머니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예전에 나는 매일 문안드리러 갔었으나 오늘은 별로 그리하고 싶지 않았다. “예, 몸이 좀 안 좋네요.” 그러자 진혜영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배를 바라보았다. “하면 의원이라도 부를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자고 나니 괜찮아졌습니다.” “하면 빨리 일어나거라. 오늘 할머니께서 황 노부인과 장 노부인을 집에 초대하셨다. 그분들은 네가 만든 빵을 좋아하시니 만들어 드리려무나.” 나는 우혁수에게 해주려고 빵 만드는 기술을 조금 알았다. 비록 많은 제빵사가 나보다 훨씬 빵을 잘 만들었으나 할머니께서 손님을 초대하실 때면 항상 나더러 빵을 만들게 했다. 예전에는 단지 만든 빵을 먹고 싶은 줄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 드렸으나 나중에 그 노망난 늙은이가 국공부의 적녀만이 자기 손자며느리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 모든 걸 깨달았다. 나더러 빵을 만들라고 한 연유가 국공부 적녀가 자신의 시중을 든다는 것을 벗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황 노부인과 장 노부인도 일개 상인 가문의 일원에 불과해서 우혁수 할머니를 포함한 이들은 귀족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씨 저택에는 빵 만들 줄 아는 시녀와 하인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들을 시키면 되죠.” 내가 거절할 줄은 몰랐던지, 진혜영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또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몸을 돌려 진혜영을 등진 채 말을 이었다. “어머님, 저 몸이 안 좋으니 한잠 더 자야겠습니다.” “그래, 그래.” 짧게 말하고 진혜영은 정자로 향했다. 안색이 어두워져 있던 우 노부인이 혼자 온 진혜영에게 물었다. “청옥은? 왜 네가 혼자 온 것이냐?” 그러자 진혜영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청옥이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좀 더 자겠다고 합니다. 빵은 제가 만들게요.” 황 노부인과 장 노부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약속이나 한 듯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한 우 노부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진혜영을 쏘아보며 말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 잔다고? 썩 깨우지 못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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