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8화

이리 말하는 내 의도를 우혁수는 알아챈 것 같았다. “대체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는가? 내가 이혼장을 줄 때까지만 좀 조용히 지내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며 그의 말을 끊었다. “해서요? 지금 당장 내게 이혼장을 줄 수 없다면 서로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지내면 될 일이지 않습니까!” “무엄하오!” 우혁수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어졌다. ‘기고만장해서 못 하는 말이 없군.’ 하지만 나는 그의 비위를 맞춰주려 하지 않았다. 전생에 나는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것도 있었지만 우혁수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우씨 가문이 정한 규칙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어.’ “사랑하지도 않는 지아비를 섬겨야 하는 것이 우습지도 않습니까? 이혼장을 주지 않겠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혼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너는 연주를 품으면 되고 나는 다른 사내를 품으면 안 된다니. 서로 신경 쓰지 많아야 공정하지.’ 물론 이것은 그냥 생각일 뿐 바람피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흰색을 제외한 많은 한복을 사서 저택에 돌아온 후, 기존의 흰색 한복들을 전부 뜰에 내다 버렸다. “다 태워버리거라.” 불이 타오르더니 흰색의 한복들은 마치 내 마음속의 우혁수처럼 서서히 화염에 뒤덮여 재가 되었다. 내가 직접 그린 우혁수의 초상화와 그를 연모하면서 쓴 편지들을 불 속에 집어 던지자마자 뒤에서 ‘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문을 발로 걷어차며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들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우혁수는 자신의 초상화가 불에 타는 것을 바라보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 내 허락도 없이 초상화를 태운 것이오?”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화가 잔뜩 치밀어오른 우혁수를 쏘아보며 말했다. “제가 그린 초상화를 제가 태우겠다는데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내 말에 우혁수는 잠시 멈칫하더니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찌 대낮에 이런 걸 태우는 것이오?” “하면 밤에 태울까요? 서방님도 이리 와서 태워보십시오.” 내 말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진 것을 보고 진혜영이 서둘러 해명했다. “청옥아, 혁수는 네가 걱정되어서 이러는 거잖아. 태울 물품들이 있다면 아랫것들에게 시키면 될 것을. 뜰 안에서 태우고 있으니 우리는 불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랐단 말이다.” 우해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이것들을 태우지 말고, 형편이 어려운 백성들에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우혁수의 아버지인 우해산은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검소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우혁수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아버지와 내 사촌 누이동생이 오늘에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짓거리 하는 연유가 대체 무엇이오?” 이에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우혁수를 바라보았다. 우혁수의 말대로 오늘에 우해산이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흘 전에 우해산이 몸이 허한 우혁수의 사촌 누이동생과 함께 오겠다고 서신을 보내왔기에. 하지만 환생 후에 나는 너무 들떠 있다 보니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이런 모습을 아버님께 보여주려 했다고 혁수는 생각하겠지.’ 나는 우혁수를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려 우해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중 나가지 못해서 참으로 송구합니다. 아버님이 오늘에 오신다는 것을 제가 깜빡 잊고 있었네요.” 그러자 우해산은 연신 손을 내저었다. “괜찮다. 어차피 다 한 가족이니 그런 인사치레는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이것들은 다 쓰레기들입니다. 나중에 제가 따로 물품을 정리하여 어려운 백성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흰색 한복을 입고 있던 위유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전생에 위유정이 위선적이어서 나는 그녀를 싫어했다. 나와 둘만 있을 때면 본색을 드러내지만, 우혁수가 있는 자리에서는 내가 괴롭히기라도 한 듯 온갖 불쌍한 척을 다 한 탓에. 그럴 때마다 우혁수가 나를 더 냉대한 것은 물론 심지어 죽일 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위유정의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렸던 나는 그녀의 병이 도질 때마다 의원을 막아 나서며 제때 치료받지 못하게 했다. 위유정의 마지막 역시 내가 막아 나선 탓에 치료를 놓쳐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우혁수는 나를 평소보다 더 차갑게 대하면서 옆에 있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하연주가 우혁수의 곁에 있는 것을 보고 미쳐버린 것인지도 모르겠군’. “형님을 뵙습니다.” 위유정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내가 계속 보고 있어서 살짝 겁을 먹은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번 생에 이년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가만있겠으나 만에 하나 해하려 든다면 똑같이 되갚아 줄 것이야.’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만 가보세요.” 내가 위유정을 해하려 할까 봐 그런지 우혁수는 떠나기 전에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흘끗 쏘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물품들을 태웠다. 우혁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나니 나는 마음이 홀가분해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산책 좀 하려고 뒤뜰에 들어섰을 때, 마침 하인이 나이 많은 의원을 데리고 뒤뜰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우 부인을 뵙습니다.” 나는 의원을 흘끗 쳐다보았다. ‘보나 마나 유정의 심장병을 치료해 주는 의원이겠지.’ “혹 누가 아픈 것입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다정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유정 아씨의 심장병이 발작한 탓에 대인께서 의원을 부르라고 해서요.” 위유정의 병세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나는 매우 궁금했다. “그래 병세는 어떠하더냐?” “유정 아씨께서는 맥이 약하고 고르지 않아서 소인도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그럴 리가. 전생에는 살릴 수 있다고 했잖아. 이 의원의 의술이 약한 건가?’ 나는 위유정을 보러 갔다. “부인이 무슨 일로 온 것이오?” 우혁수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냥 보러 왔을 뿐입니다.” “부인은 안 봐도 되니 당장 나가시오!” “캑캑... 오라버니, 형님, 저는 괜찮으니 싸우지 마세요. 과로로 인해서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니 의원이 지어주신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나는 깨어난 위유정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제 도움이 필요 없는 것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실 나는 어의를 불러달라고 아버지께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위유정이 병을 치료할 수 있든 없든, 그녀가 병 치료하는 것을 이번 생에는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한다면 혹시 모를 변고가 생기더라도 내 탓으로 돌리지 못하겠지.’ 말을 마치고 나는 자리를 떴다. 처소에 돌아온 후, 나는 종이와 붓, 먹을 가져오라고 다정과 다영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혁수가 나를 찾아왔다. “오늘은 천향 공주의 생신이라 밤에 궁에서 연회가 열릴 것이오. 하니 나와 함께 가기요.” 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답했다. “그러시지요.” 내가 이리 담담하게 말한 적이 없어서인지 우혁수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나가다 말고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검은색 비단에 흰 학이 수놓아진 한복을 입고 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으나 굳이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요 며칠에 보인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겠지.’ 그때, 나를 쳐다보던 우혁수의 눈빛이 갑자기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는 살짝 의아했으나 이내 그 이유를 알아챘다. ‘아마도 내가 그린 그림 때문인가 보군.’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