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규칙을 어겼으니 벌을 받아야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주성훈이 여기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허리를 숙여 나를 내려다봤다.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입술이 저절로 달싹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내 귓가를 스치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따뜻한 숨결이 살짝 닿는 순간, 마치 사냥꾼이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무너진 순간을 노려 일부러 흔드는 것 같았다. 그의 몸에서 은은한 민트 향이 스며들었다. 화를 내야 하는데 눈물이 먼저 차올랐다. 울먹이며 억눌렀던 말을 내뱉었다. “정말 날 버리려고 했어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깊게 바라봤다. “누가 그래?” 나는 입술을 꼭 깨물며 훌쩍였다. “메시지를 그렇게 많이 보냈는데도 답장 한번 없었잖아요. 떠나길 바란 거 아니에요? 아저씨 뜻대로 떠날게요.” 그는 내가 이렇게까지 울 줄은 몰랐던 듯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나를 안아 올렸다. 나는 흐느끼며 그를 밀쳤다. “놔요.” 하지만 그는 들리지 않는 듯 오히려 더 단단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울면서 그의 가슴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화림으로 돌아갈 거예요. 이제 아저씨 안 좋아해요...” 너무 세게 부딪친 탓인지 그가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 원망은 있었지만 그를 아프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 순간 미안해져 그의 가슴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괜찮아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안해진 나는 그의 옷깃을 꼭 잡았다. “아저씨, 제가 다치게 한 거예요?” 그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얌전히 있어. 움직이지 마.”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안은 채 공항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난 화림으로 돌아갈 거예요. 승안 씨가 기다리고 있다고요.” 주승안의 이름이 나오자 주성훈은 걸음을 멈추고 뒤쪽 경호원들을 향해 말했다. “주승안을 찾아.” 그러고는 다시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는 검은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