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잘 자, 우리 아린이
강태준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얇은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백아린, 점점 더 궁금해지네. 말 안 해도 괜찮아. 내가 천천히 알아낼 테니까.”
낮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애정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마치 이미 그녀를 길들여진 애완동물처럼 여기는 듯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묘한 압박감에 백아린은 몸서리를 쳤다.
‘내가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가만히 있으면 될 걸, 왜 굳이 이런 얘길 꺼낸 거야...’
백아린은 급히 웃음을 띠며 아첨하듯 말했다.
“뭘 알아내요,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좀 선견지명이 있는 편일 뿐이죠. 안 믿으면 조사해도 돼요. 저는 떳떳하니까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은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태준 씨가 내가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숨기고 이용하려 했다는 걸 눈치채면... 과연 날 가만히 둘까?’
강태준은 더 묻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잘 자. 우리 아린이.”
그 한 마디에 백아린의 심장을 세게 쳤다.
‘우리 아린이라니... 누가 위협적인 말을 이렇게 다정하게 해? 애정 표현일까? 아니면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 아린이’ 대신 ‘내 사냥감’이 되는 건 아닐까?’
“아린아, 왜 그래?”
추금선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백아린은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백아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늦었으니 이제 자요, 할머니.”
“그래. 그런데 이건 꼭 잘 챙겨둬라. 옥희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할머니, 이 인삼은 매일 조금씩 드세요. 그냥 두면 뺏길 수도 있으니까요. 나머지는 제가 잘 숨겨둘게요. 아주머니가 아무리 땅을 파도 못 찾을 거예요.”
백아린은 처리할 수 있는 건 할머니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하나씩 들고 2층으로 올랐다.
내일 집 수리를 시작해야 해서 낡은 침대도 모두 바꿔야 했다. 그래서 모든 걸 잠금장치가 있는 오래된 장롱에 넣어두었다.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손에 힘이 빠져 갔다. 값비싼 선물들이 반 장롱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백아린은 침대에 털썩 앉아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혹시 눈을 뜨면 다시 차갑고 무서운 저택 안, 백시연에게 쫓기는 자신일까?
강태준 같은 사람은 애초에 몰랐고 운명을 바꿀 방법도 없는 그런 상태로 돌아간다면...
복잡한 감정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고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창밖 달빛이 천천히 지붕 위를 타고 오를 무렵, 침대에 누운 백아린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악몽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