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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소녀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아빠, 정말 제가 해냈어요!” 소녀의 목소리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응.”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삼각 피아노에 기대어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부녀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얼굴의 여자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정교하게 말린 긴 머리카락은 그녀의 새하얀 어깨 위에 부드럽게 흘러내려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남자는 소녀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여자 쪽으로 걸어갔다. 왼손은 허리 뒤로 돌리고 상체를 45도 앞으로 숙인 채 오른손을 아래로 향하게 하며 여자에게 천천히 내밀었다. 춤을 청하는 예의 바른 자세였다. “아리따운 여성분, 저와 함께 춤을 추시겠습니까?” “좋아요.”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남자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셔츠를 입은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잡고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붉은 드레스가 휘날리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소녀는 행복하게 피아노를 치며 건반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눌렀다. 또 한차례 바람이 불어오자 그녀는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커튼을 올려다보았다. 창문 너머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의 별장 2층 발코니에 베이지색 영국풍 폴로셔츠를 입은 한 소년이 멀리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마 앞에 드리워진 가느다란 머리카락 아래의 깊고 검은 눈동자는 평온해 보이면서도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면서 황노을은 그 소년의 어린 시절 얼굴이 성인이 된 도서찬과 겹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야말로 성숙하고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날카로움이었다. 삐비빅... 병실 안, 황노을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아찔한 눈앞, 하얀 천장이 계속 돌아가는 것만 같았고 속이 울렁거려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공기 중에는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고 관자놀이가 펄쩍 뛰면서 머리가 아팠다. 황노을은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느낌은 마치 거센 파도가 치는 배의 갑판 위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눈앞에는 방금 꾼 꿈속의 장면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몇 년 전 부모님이 춤을 추던 모습, 도서찬의 검은 눈동자, 끊임없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몸이 불편해서인지, 아니면 과거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한연서 씨, 갑자기 이렇게 발버둥 치는 이유 혹시 이 사고 본인이 사주한 거예요? 그래서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죄를 떠넘기려는 건가요?” “임지은 씨, 적당히 하세요!” 병실 밖에서 들려온 다투는 소리에 황노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목소리는 임지은과 도서찬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 싸우고 있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지럼증이 계속되었지만 힘겹게 몸을 일으킨 황노을은 병상에 몸을 기대어 옆에 있는 안내판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뇌진탕’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마에 거즈가 있는 것을 느낀 순간 이전의 충돌이 떠올라 본능적으로 배를 만져보았다. 배에는 여전히 희미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아이가... 무사할까?’ 황노을은 알 수 없었다. “한연서 때문에 나랑 싸우려는 건가요!” 병실 밖의 다툼은 점점 더 격해졌다. 임지은이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억지로 병상에서 내려온 황노을은 플랫슈즈를 신고 벽을 잡은 채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내 멀지 않은 비상구 입구에 선 세 사람을 발견했다. 도서찬, 임지은, 한연서. 도서찬은 아침에 입었던 그 옷차림 그대로였고 한연서는 베이지색 샤넬 정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들은 흰 가운을 입은 임지은과 무슨 일인지 다투고 있는 것 같았다. 임지은이 불리한 상황에 처할까 봐 걱정된 황노을은 바로 소리쳤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노을아!” 가장 먼저 반응한 임지은이 다가와 황노을을 부축했다. 한연서를 부축한 채 자리에 서 있던 도서찬은 미간을 찌푸리며 황노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녀의 이마에 있는 거즈를 본 순간 시선이 멈췄다. “무슨 일이야?” 황노을이 물었다. 임지은이 설명하기도 전에 도서찬이 황노을을 바라보더니 몹시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네?” 피부가 다소 창백하고 이마에 살짝 거즈를 감싼 황노을을 본 도서찬은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황노을과 임지은이 함께 꾸민 연극이었단 말인가? 가짜 교통사고를 꾸며 자신을 억지로 한연서 곁에서 떼어 놓게 한 것인가? 차 안에서 받은 전화, 그리고 한연서가 죄책감에 토할 듯이 걱정하던 모습을 떠올린 도서찬은 분노가 더욱 커졌다. ‘그래서 임지은이 자신을 황노을을 안 보여줬던 거다. 임지은의 헛소리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분노로 목덜미의 혈관마저 불거진 도서찬은 시선을 거두었다. 자신의 조급함과 걱정이 그저 헛된 웃음거리가 되다니... 황노을은 사실 조금 전 깨어났을 뿐이고 뇌진탕으로 인한 어지럼증 때문에 구역질이 났던 것이다. 이때 임지은이 소리를 질렀다. “아무렇지도 않다고요? 노을 이마에 난 상처 안 보여요? 내가 방금 한 말 못 들었어요!” 한연서가 빈정거리며 되물었다. “저기 저 거즈 감긴 거요?” “한연서 씨!” 임지은은 더 화를 냈지만 한연서는 당당하게 버티며 말했다. “운전 중이던 서찬 오빠에게 전화 수십 통을 걸고 임지은 선생님까지 시켜서 서찬 오빠를 욕하고 여기로 부르게 한 게 고작 그 작은 상처 때문이에요? 고속도로에 차가 얼마나 많은지, 서찬 오빠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알기나 해요? 임지은 선생님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 때문에 황노을 씨가 죽을 뻔한 줄 알았어요! 황노을 씨, 임지은 씨, 나 한연서 비록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서찬 오빠가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단호한 말투로 도서찬의 뒤에서 나서는 한연서는 몸을 살짝 떨고 있었지만 눈빛은 단호했다. 마치 자신의 남자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강인한 여전사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갑게 황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도서찬은 눈에 황노을에 대한 짜증과 혐오감이 뚜렷하게 서려 있었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한연서 씨, 지금 싸우자는 거예요?” 더 이상 참지 못한 임지은은 바로 달려들어 한연서의 얼굴을 후려치려 했다. 한연서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울 태세를 보이자 도서찬이 손을 내밀어 막았다. 무슨 상황인지 아직도 어리둥절한 황노을도 임지은을 잡아당겨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보호했다. 비상구 입구 밖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싸움의 중심은 임지은과 한연서, 임지은은 이미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한연서는 싸움 의지가 충만해 보였지만 눈은 계속 황노을 쪽을 힐끔거렸다. 두 사람 모두 거침이 없었다. “한연서, 감히 내 목을 졸라!” 퍽! “아악! 임지은, 너 내 얼굴을 때렸어!” 황노을과 도서찬은 옆에서 말리려 했지만 네 사람이 뒤엉키면서 누가 누구 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싸움은 비상구 입구에서부터 안으로 번졌고 한연서와 임지은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갑자기 한연서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치더니 자신의 머리로 임지은의 머리를 강하게 박았다. 동시에 몸을 이용해 도서찬의 손을 힘껏 밀어냈다. 그 순간, 임지은을 붙잡고 있던 황노을은 허리 쪽에서 강한 힘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원래 뒤에 서 있던 자신이 어느새 계단 옆으로 밀려난 것을 알았다. 배에 아직 아이가 있는 상황, 하지만 이 복도인데 만약 떨어지면... ‘안 돼!’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황노을은 허리에 최대한 힘을 주며 손을 뻗어 난간을 잡아 몸을 지탱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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