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번째로 서울의 신흥 권력자가 벌인 정사의 뒤처리를 하던 때에 백하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장 의사 신분으로 다시 복귀할래요. 만약 죽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을 거고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옅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때 네가 선호 치료비 마련하려고 그 생지옥에 갔던 거 알지? 그러다 목숨 잃을 뻔도 했잖아. 선호랑 다시 만난 지 이제 1년도 안 됐는데... 정말 후회 안 해?”
백하임은 거울 속에 비친 뼈만 남은 듯 초췌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어린 동생을 홀로 키워냈다.
졸업 후에는 서울 최고의 병원에서 일할 수도 있었지만 백하임이 선택한 건 전쟁터였다.
총알이 허벅지를 관통해도, 폭발로 인해 팔 하나를 잃어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후회 안 해요. 열흘 뒤에 차 한 대만 보내줘요.”
전화를 끊은 백하임은 의수로 바닥에 흩어진 콘돔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지난 반 년 동안 고선호는 매일 밤, 다른 여자를 데려와 문밖에서도 생생히 들릴 만큼 그들의 신음을 흘려보냈다.
매번 끝나면 백하임에게 뒷정리를 시켰고 심지어 사랑을 나눈 상대에게 임신이 쉽게 되도록 도움을 주는 약까지 직접 처방하게 했다.
이 모든 건 다 전에 그녀가 고선호를 배신했던 일 때문이다.
즉, 아직 그는 그 일을 잊지 못해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