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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성유리는 제 자리에 우뚝 멈춰선 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방건우는 약재를 집으려던 것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자 잔뜩 굳어진 성유리의 모습이 보였다. 시선을 돌리니 뒤에는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고 그는 바로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번 강주시를 떠나기 전부터 그는 두 사람 사이가 범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런 사이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여하간에 한 명은 조카며느리였고, 다른 한 명은 작은아버님이었으니까... 하지만 다급한 박지훈의 눈빛만 봐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꼭 오해한 애인에게 설명하러 온 사람의 눈빛이었다. “유리 씨, 시간 조금만 내줄 수 있어?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성유리는 몸을 굽히더니 떨어진 약재를 주웠다. 그러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죄송해요. 지금 너무 바빠서요. 아파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이만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드물게 싸늘했다. 박지훈의 각도에서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랬기에 싸늘해진 그녀의 태도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고개만 돌린다면 분명 그의 초조해진 눈빛을 볼 수 있을 것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박지훈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입을 열려던 때 누군가 먼저 끼어들었다. “박지훈 씨, 뒤에 환자들이 많으셔서요. 협조 부탁드릴게요. 저희는 환자가 우선인 사람들이라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마시죠.” 방건우는 돌아서며 차가운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박지훈도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주위의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둘 사이에서는 스파크가 오갔다. 알 수 없는 싸늘한 분위기에 입구에서 기다리던 운전기사마저 긴장하게 되었다. 박지훈의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이렇듯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성유리는 끝까지 몸을 돌리지 않았다. 분위기가 더 심각해지려던 순간 박지훈의 핸드폰이 울리며 이 숨 막히는 분위기를 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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