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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7화

그 시각 다실 안. 성유리는 맞은편의 남자를 조용히 바라보며 약상자를 든 손에 계속해서 힘을 준 탓에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박진우는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눈동자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몇 초 동안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네가 너무 기어오르는 것 같아서 기 좀 눌러주려고. 괜히 잘났다고 착각하면서 무모하게 덤비지 않게.” 성유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허, 그런 식이면 박 대표님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나요?” “이런 일로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높은 곳만 바라보면 떨어질 때 더 비참한 법이니까.” 박진우는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으로 여자를 보면서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벌어지고 진실을 알기 전까지 계속 생각했어요...” 성유리는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이어갔다. “뒤에서 나를 해치라고 시킨 사람은 분명 나에게 깊은 원한이 있어서 이런 수작까지 부리며 나와 내 병원을 모함하는 거라고.” 박진우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성유리의 목소리는 살짝 울먹이는 듯했다. “그런데 당신일 줄은 전혀 몰랐네요.” 그래도 한때 한 이불을 덮고 잤던 사이였다. 이 남자는 그녀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고 늘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한 번도 서로의 등에 칼을 꽂은 적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게다가 성유리가 한때 그토록 깊이 사랑했던 남자였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과거의 모든 사랑은 전부 한낱 웃음거리로 변해버렸고 지난 감정은 극도로 비참해졌다. “내가 말했지. 너는 최근에 너무 거만해져서 이미 남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이대로 가다간 분명 누군가가 너에게 손을 쓸 텐데 나는 단지 미리 그걸 알게 해주려고...”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성유리는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들어 그의 가슴에 대고 모든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 박진우는 뒤에 있던 의자에 그대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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