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0화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맞닿았다. 하지만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한 침묵 속, 한참이 지나서야 박지훈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다 털어놨어. 그럼 이번엔 네 차례야. 너도 나한테 솔직히 말할 때 되지 않았어?”
성유리는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내가 뭘 숨겼다고 생각해요? 난 그 사람과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굳이 말할 것도 없죠.”
다음 순간, 박지훈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당겼다.
순간적으로 가까워진 거리 탓에 성유리의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엔 차가운 기류가 서려 있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그의 날카로운 의심에 성유리는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응시하며 의미심장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작업실에서 박진우 집까지, 그리고 다시 집으로 오는 데까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어요. 그 짧은 시간에 뭘 할 수 있겠어요?”
그 말에 박지훈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날카로웠다.
성유리는 씁쓸한 미소를 띠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박진우가 비록 싸가지 없고, 속 좁고, 인간성도 꽝이지만 그쪽 못지않게 능력은 있어요. 반 시간으론 어림도 없을걸요?”
그 말이 끝나자, 박지훈의 이마엔 굵은 핏줄이 확 드러났다.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더 들어갔다.
성유리는 그가 화가 난 걸 눈치채고 반사적으로 가슴팍을 밀치려 했다.
하지만 박지훈은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몇 년이 지난 일인데, 그런 세세한 기억까지 생생하네? 기억이 그렇게 선명한 걸 보면 꽤 만족스러웠나 봐?”
그 말에 성유리는 순간적으로 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빛 속엔 분노가 선명하게 번지고 있었다.
정말로 화가 난 걸까?
성유리는 그를 달래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박지훈이 한 번 화가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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