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시아의 생일 당일, 박씨 가문의 저택은 동화 속 성처럼 꾸며져 있었다.
안해린은 연한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녀는 정교한 애완동물 상자를 들고 시아에게 다가와 열었다. 안에는 새하얀 페르시안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시아 생일 축하해.”
안해린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해린 이모가 너한테 뭘 가져왔는지 봐.”
시아는 깜짝 놀라며 환호성을 지르더니 즉시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작은 얼굴은 부드러운 털에 파묻었다.
“고마워요. 해린 이모! 시아는 새끼 고양이를 제일 좋아해요!”
온서연은 앞으로 나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딸을 보지 않고 안해린에게 온화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해린아, 신경 써줘서 고마워. 하지만 다음에 선물을 주기 전에는 주인의 상황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겠어. 나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심해. 이건 이 동네 사람들마저 다 아는 사실인데 해린이 너는 정말 몰랐던 거야? 아니면 일부러 그랬던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주변의 몇몇 손님들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안해린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안해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서둘러 설명했다.
“저, 저는 몰랐어요... 서연 언니, 죄송해요...”
온서연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옆에 있는 집사에게 직접 명령했다.
“최영훈 씨, 이 선물은 가져가서 다른 곳에서 키우도록 해요. 해린이의 마음이 생일 파티를 방해하는 근원이 되지 않도록 말이에요.”
시아는 그 말을 듣고 박태준의 뒤로 숨더니 작은 고양이를 꽉 안고 말했다.
“안 돼요. 오늘은 시아 생일이에요. 시아는 새끼 고양이를 원해요!”
온서연은 딸이 그 고양이를 보호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 마지막 남은 온기마저 사라졌다.
그럴 만도 했다. 딸과 남편 모두 안해린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알레르기로 숨쉬기 어려워하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 고통스러웠던 순간들마저도 그들에게는 이 고양이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온서연은 딸의 투정을 무시하고 고양이를 억지로 내보냈다.
파티가 시작되고, 손님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박태준은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사랑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바쁘신 와중에도 우리 딸 시아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시아가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시아를 아끼고 보살펴 준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사랑 못지않은 마음을 보여준 사람, 바로 안해린입니다.”
그는 손을 뻗어 멀리 있는 안해린을 자신 곁으로 불렀다. 안해린은 놀란 척 입을 가리며 눈가가 붉어지더니 황송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박태준은 모든 손님을 향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안해린은 시아를 친딸처럼 여기고, 시아 또한 안해린과 특별히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지켜보는 이곳에서 안해린을 정식으로 시아의 양어머니로 임명하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이 더욱 깊어지기를 바라며, 이것이 제가 시아에게 주는 특별한 생일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현장은 천둥 같은 박수갈채로 뒤덮였다. 안해린은 즉시 손가방에서 정교한 보석 상자를 꺼내 시아에게 직접 준비한 순금 목걸이를 걸어주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예쁜 딸, 이건 양어머니가 너에게 주는 인연의 증표야.”
시아는 기쁘게 금목걸이를 만지며 안해린의 목을 안고 뽀뽀했다.
“감사합니다. 양어머니. 시아는 양어머니가 제일 좋아요!”
참으로 아름다운 모녀의 모습이었다. 온 도시의 명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의 남편과 딸은 다른 여자와 감동적인 감정 연극을 펼치고 있었다.
진정한 박씨 가문의 사모님이자 시아의 친어머니인 그녀는 오히려 가장 쓸모없는 관객이 되었다.
이때 어린 소녀가 달려와 물었다.
“시아야, 너 양어머니가 생겼는데 그럼 엄마는 어떡해?”
시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엄마는 나랑 안 놀아줘. 역시 양어머니가 나한테 제일 잘해줘. 양어머니가 말했어. 앞으로 매일 나랑 놀아주고 디즈니랜드도 데려가 줄 거라고!”
온서연의 마음은 마치 누군가 날카롭게 움켜잡은 듯했다. 그녀는 딸이 독립심을 기르도록, 넘어졌을 때 일부러 돕지 않고 아이가 울부짖어도 스스로 일어나게 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지난 생일에 자신이 고열에 시달렸음에도, 약속했던 대로 딸의 성장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촛불을 끄는 데 힘을 다했던 자신도 떠올렸다.
매번 출장에서 아무리 늦어도 영상 통화를 했던 것은 오직 딸의 나지막한 ‘엄마’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언제나 딸에게 엄격한 어머니였지만, 그것은 단지 딸이 자라서 강하고 자립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씨 가문 전체가 시아를 너무 버릇없이 키웠고, 그녀만 나쁜 사람 역할을 맡았기에 결국 딸에게는 가장 무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언젠가 딸이 자신의 고충을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오늘날 ‘엄마는 나랑 안 놀아줘’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박태준은 마침내 술잔을 들고 잊혀진 채 구석에 있던 온서연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몸을 숙여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연아, 내가 먼저 일을 저질러서 미안해. 시아가 안해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봐. 난 그냥 딸에게 깜짝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너는 어머니로서 좀 더 대범해져야지.”
온서연은 눈을 들어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해린이가 시아의 양어머니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신경 써줘야겠네요. 양어머니도 엄연히 엄마인데 놀아주는 것만 담당할 수는 없죠. 우리 같은 집안의 아이들은 악기, 서예, 서화, 예절 교육,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어요. 이 힘든 일들은 앞으로 양어머니께서 수고해주셔야겠네요. 다만 이번 선물처럼 마음은 담았지만 생각 없이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은 안해린을 불 속에 밀어 넣은 격이었다. 받아들이면 힘은 들지만 보람이 없는 수많은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것이고, 거절하면, 시아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겉모습뿐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안해린은 미소가 굳어진 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박태준도 표정이 변했지만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온서연은 그들의 눈빛 싸움을 못 본 척했다.
파티 순서가 계속되고 여주인으로서 온서연은 연설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심호흡하고 나서 모든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른 채 치마를 꽉 잡고 마지막 체면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가 겨우 두 걸음을 옮겼을 때 옷감이 찢어지는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서연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등 뒤로 어깨뼈부터 허리까지, 길게 찢어져 속의 가녀리고 매끈한 피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