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엉망이 된 연회장에는 죽음과 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박태준은 말없이 양복 재킷을 벗어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의 동작에는 억눌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는 넥타이를 풀며 마침내 차가운 시선을 온서연에게 던졌다.
“온서연, 만족해?”
그의 목소리는 이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듯했고, 모든 단어는 얼음으로 덮여 있는 것 같았다.
“시아의 생일파티에서 소동을 피워 온 세상이 알게 했는데, 이게 네가 원하던 결과야?”
안해린은 눈가를 붉히며 나약하게 박태준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태준 오빠, 언니를 탓하지 말아요. 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오지 말아야 했는데. 저는 단지 시아가 행복하기를 바랐을 뿐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박태준은 곧 몸을 돌려 그녀를 뒤로 감싸더니 목소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는 안해린을 안정시킨 뒤 다시 돌아섰다. 그는 얼굴에 묻어 있던 짜증을 더는 숨기지 않았다.
“너 대체 뭘 원하는 거야? 드레스 한 벌이 경찰까지 부르며 난리를 칠 만큼 큰일이야? 경찰이 박씨 가문에 들이닥친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고 있어? 언제부터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하게 된 거야? 모든 사람 앞에서 안해린을 억울하게 몰아붙이고, 시아의 생일 파티를 망쳐 놓았는데 시아의 감정은 생각 안 해? 오늘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알아?”
하나하나의 비난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온서연은 그의 분노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단순한 공범이 아니라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은 당당하게 그녀를 나무랄 수 있었다.
온서연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은 박태준에게 있어 무언의 항의와 완고함으로 보였다. 그의 눈 속의 분노가 더욱 거세졌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자신의 얼굴을 보게 했다.
“온서연, 안해린은 시아의 양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너의 생명의 은인이야! 앞으로 다시는 안해린을 건드리지 마! 오늘 일은 안해린에게 사과해야 해!”
온서연의 눈빛이 공허하게 그를 스쳐 지나가며 마치 그를 통해 다른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7년 전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코끝에 다시 감도는 듯했다. 병상에 누운 그녀는 안해린이 소매를 걷고 그녀에게 수혈해 주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안해린의 손을 잡고 울먹였다.
“살려줘서 고마워.”
안해린은 부드럽게 웃었다.
“서연 언니,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이 생명의 은혜가 안해린이 그녀를 계속 압박하는 발판이 될 줄을. 그녀는 이 은혜를 이용하여 박태준에게 접근했고, 온서연의 감사함을 최고의 방패로 삼았다.
온서연은 손톱이 깊숙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엄마 나빠요!”
시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온서연을 기억 속에서 끌어냈다. 온서연은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박태준의 손을 뿌리쳤다.
“왜 양어머니를 괴롭혀요! 엄마 때문에 제 생일파티를 다 망쳤어요! 엄마 미워요!”
슬픔보다 더 큰 것 절망이 이런 느낌이었다. 박태준은 딸이 온서연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결국 차가운 코웃음으로 바뀌었다.
“봐, 아이까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고 있잖아. 온서연, 너 자신을 잘 반성해!”
말을 마친 그는 더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나약해 보이는 안해린과 화난 표정의 시아를 데리고 문 쪽으로 향했다.
“안해린을 배웅해주고 올게.”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가 다시 ‘쾅’ 닫혔다.
한참이 지나서야 박태준은 사람들을 배웅하고 돌아왔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시아는 여전히 심통 난 표정이었다. 박태준은 거실로 걸어왔지만 여전히 온서연을 쳐다보지 않았다.
마침내 시아가 움직였다. 아이는 물을 따르고 있던 온서연을 밀어냈다.
“저리 가요! 보기 싫어요! 양어머니 보고 싶어요!”
컵이 흔들리며 뜨거운 물이 그녀의 손등을 데었다. 하지만 온서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가볍고 평온해 마치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을 얘기하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
그녀는 시아에게 말하는 듯했지만 박태준에게 말하는 듯하기도 했다.
“곧 너에게는 엄마가 안해린 한 명만 있을 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두 사람이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안방으로 걸어갔다.
딸깍.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명확하고 단호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