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이루나는 서태준에게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병실을 나섰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병실에서 나온 그녀는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코너를 돌자마자 익숙한 얼굴과 마주치고 말았다.
이은서였다.
전신 무장한 이루나였지만 이은서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은서는 팔짱을 낀 채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며 비아냥거렸다.
“깜짝이야. 하마터면 도둑인 줄 알고 신고할 뻔했네. 그래도 주제 파악은 제대로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래, 네가 그래도 사람이면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여기를 찾아오지는 못하지.”
이루나는 이은서를 한번 노려본 후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그녀를 피해 다시 갈 길을 갔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이은서가 더 바짝 붙어오며 도발하듯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고개 빳빳이 쳐들고 잘난 척하던 년은 어디 갔대? 그 더러운 몸뚱이로 나와 경쟁하려 했던 거 아니었어? 왜 지금은 꼭 남자한테 버림받은 꼴을 하고 있을까? 응?”
이루나는 자신과 피가 이어진 ‘동생’을 빤히 바라보며 문득 이은서가 그렇게까지 만만한 상대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준이를 귀국하게 만든 사람이 혹시 너야?”
이루나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물었다.
이은서는 그 말에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너는 저열한 수법으로 내 약혼식 망쳐도 되고 나는 안 돼? 이 정도면 약과지. 내가 당한 망신에 비하면. 그보다 솔직히 놀랐어. 서태준이 자살까지 할 정도로 너한테 진심일 줄은 몰랐거든.”
이은서는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거리낌 없이 막 내뱉었다.
“아쉽게 됐어.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만약 서태준이 죽었으면 너는 지금쯤 아무도 없는 야산에 파묻힌 채로 죽어있었을 거야. 그 꼴을 못 보게 돼서 참 아쉬워.”
이은서는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컸다. 그래서 이루나는 그런 환경에서 커온 사람이면 할 줄 아는 게 기껏해야 분노를 표출하는 것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