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백하임의 대답을 들은 순간 고선호는 모든 힘을 놓아버리듯 마음이 가라앉았고 곧 깊이 잠들었다.
그는 설령 이대로 죽는다 해도 아무런 미련이 없을 것 같았다.
백하임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억지로 자기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백여진과 고선호의 비서에게 차례로 연락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곧바로 비행기를 준비하겠습니다. 5시간 후 도착할 예정이에요.]
의외였던 건 백여진이 함께 온다는 소식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백여진은 예전처럼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이 아니었다.
살이 많이 빠졌고 표정조차 보이지 않는 그 얼굴은 마치 어둠에 잠식당한 사람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고선호가 이 정도로 다쳤다면 울면서 달려왔을 텐데 지금의 그녀는 그저 무표정하게 서 있을 뿐 미동도 없었다.
백하임은 어떻게 얼굴을 마주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 대표님 상태는 괜찮나요?”
비서는 고선호를 보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계식 호흡기를 연결했다.
“국내로 가서 치료만 받으면 문제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가 고선호를 안쪽 칸에 눕히려고 떠나자 그 자리에는 백하임과 백여진, 두 사람만 남았다.
백여진은 천천히 다가와 낮고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왜 아직도 살아 있어?”
“응?”
“언니 일부러 그런 거지? 내 결혼식 날, 송 선생님한테 진실을 말하라고 시킨 거 언니 짓이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우스운 여자인지 보여주려고 그랬어? 나를 서울의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백여진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손을 쭉 뻗어 백하임의 가느다란 목을 감싸 쥐었다.
“여진아, 진정해. 내가 그런 짓을 왜 해? 넌 내 동생이야. 내가 어떻게...”
“진정하라고?”
백여진은 깔깔 웃었다.
“언니는 내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아? 언니, 난 임신까지 했었어. 그런데 언니 때문에 선호가 나랑 아이를 버리고 언니 따라 전쟁터로 갔어! 그리고 언니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백하임은 숨이 턱 막혔다.
‘아이? 두 사람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어?’
그 순간, 조금이나마 흔들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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