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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백여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또? 언니가 지금까지 약속한 게 한두 개야? 제대로 지킨 적이나 있긴 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지. 평생 내 곁에 있어 주겠다고. 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언니가 직접 빼앗아 갔잖아. 내 행복을 망가뜨린 건 언니야!” 백하임의 숨조차 쉬기 힘들만큼 가슴이 아팠다. 3년 전 떠날 때 가장 미안했던 사람은 바로 동생이었다. 돈을 남기고, 등록금을 내주고, 3년 치 생활비까지 준비해 갔지만 부모를 잃고 이어서 언니마저 떠나버린 상실감을 동생이 어떻게 견뎠을지 생각조차 하기 두려웠다. “미안해.”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사과뿐이었다. “백하임 씨, 당신이 사과할 필요 없어요! 잘못한 사람은 백여진 씨죠!” 백하임의 안전을 위해 비서는 백여진을 의자에 묶어 두었다. 그럼에도 백여진은 멈추지 않았고 끝없이 악의로 가득 찬 욕설을 퍼부었다. 백하임은 묵묵히 버텼다. 가슴이 찢겨나가는 느낌을 그대로 안고.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그제야 아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내 병실에 고선호를 옮기자 송지한은 그녀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괜찮아. 한국에 돌아왔으니 안전해. 하임아, 다시는 전쟁터로 가지 마. 널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기 있어.” 백하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가 남으면 여진이는 어떡하지?’ 차마 결심을 내리지 못해 망설이던 무렵, 고선호가 마치 느낀 듯 힘겹게 눈을 떴다. 그는 얼마 안 남은 힘을 모아 백하임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잡았다. “하임아, 가지 마. 나 다 나으면 너랑 같이 전쟁터로 갈게.” 백하임은 그 말에 눈가가 붉어졌지만 그의 손을 조심히 떼어냈다. “너랑 여진이한테는 아이도 있었잖아. 더 이상 위험해지면 안 돼. 여진이랑 결혼해서 잘 살아야지.” 고선호는 정신없이 기침을 하다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건 거짓말이야. 아이도 없어. 그건 실수였다고. 난 여진이를 좋아한 적 없어. 내가 걔랑 결혼하면 우린 더 불행해져. 하임아, 난 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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