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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백하임은 눈을 뜨자마자 핏발이 선 고선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백하임, 너 도대체 누구한테 골수를 기증한 거야?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골수를 기능했어? 그 사람이 너한테 얼마를 줬는데? 돈이 아니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등을 돌렸던 네가 그 사람에게는 골수를 기증한 거야? 혹시... 그 골수 나한테 기증한 거야?” 고선호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고 백하임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곧, 그녀의 동생인 백여진과 결혼할 사람이니 지금 와서 진실을 말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백하임은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물을 저도 모르게 뺨을 타고 줄줄 흘렀다. “설마 내가 너한테 골수를 기증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누가 그렇게 멍청해서 너 같은 사람한테 골수를 주겠어? 뭐 하나 알려줄까? 그 골수는 내가 2억 받고 판 거야.” 고선호의 안색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꽉 쥔 주막 탓에 손톱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는 잠시라도 골수 기증자가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했었다. 위출혈로 쓰러질 만큼 술을 마시고 반쯤 정신이 나간 채 두 사람의 사진을 쓸어내리며 버텼던 그 시간들.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고선호는 긴 손가락으로 백하임의 턱을 마치 부러뜨릴 듯 꽉 잡았다. “하여간 배짱 하나는 정말 끝내주네.” 그는 그녀의 옷깃을 움켜쥐어 번쩍 들어 올렸다. 지금 고선호의 눈에 맺혔던 눈물은 단숨에 사라지고 남은 건 미움과 원망뿐이었다. 그는 백하임을 백여진의 병상 앞에 내던지며 분노를 표출하듯 고함을 질렀다. “오늘부터 넌 여진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다녀. 네가 서 있는 걸 보기만 해도 난 네 다리를 분질러버릴 거야.” 그 말에 백하임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무릎 꿇고 서비스하려면 돈은 더 받아야지.” “하.” 백하임의 뻔뻔함에 고선호는 비웃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 너 돈 좋아하지? 그래서 난 너한테 단 한 푼도 안 줄 거야.” 그날 밤, 백하임은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기에 이미 감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고선호의 시선은 이따금 그녀를 스쳤지만 절대 마주치지 않았다. 예전, 이와 똑같은 달빛 아래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먼 과거의 그림자였다. 그때, 병실 밖 간호사들이 나누는 대화가 백하임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31번 병상 아직 돈 모으고 있다며? 겨우 골수 매칭됐는데 수술비가 문제래.” “예전에 병원에 있던 의사 있잖아. 남자 친구 치료비 모으려고 전쟁터 나갔다던데. 그거 보상금이 1억이래.” “전쟁터? 거긴 목숨 내놓는 곳이잖아. 난 남자 친구를 아무리 사랑해도 못 갈 것 같아.” “전쟁터 갔다가 돌아온 이 선생님 말로는 그 의사 팔 하나가 잘렸다나 뭐라나...”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지만 백하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오른팔을 숨기고는 고선호를 올려다봤다. 다행히 고선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왜? 이제 와서 그때 네가 전쟁터에 갔었다고 말하려는 거야? 어디 한번 지어내 봐. 네 거짓말 들춰내는 건 내 취미니까.” 백하임은 가슴이 쿡쿡 찔린 듯 아팠지만 그래도 억지로 웃어 보였다. “아쉽네. 왜 나는 그때 그런 멋진 거짓말을 생각 못 했을까?” 고선호의 눈빛은 독을 머금은 듯 싸늘하게 식어갔다. “백하임,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후회하는 건 너를 사랑했던 거야.” 백하임은 숨이 턱 막혔다. 그의 단호한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렸지만 정신은 아득해져 고선호가 언제 병실을 떠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저녁, 고선호는 그녀를 술자리로 데려갔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그에게 술을 권했고 고선호는 잔을 모두 백하임에게 넘겼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이 3년 동안 겪었던 위출혈의 고통을 똑같이 맛보게 하고 싶었다. 비열하게도 고선호는 백하임도 자신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잔, 또 한 잔, 아무 말 없이 들이켰고 술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이 막혔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괴로운 거였구나. 그럼 대체 3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버텼던 걸까?’ 이제 겨우 일주일 남았다. 백하임은 남은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고선호의 몫을 조금이라도 대신 마셔주고 싶었다. ‘내가 마시면 선호는 앞으로 조금 덜 마셔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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