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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이틀 뒤, 공사 현장 입구. 오늘은 박씨 가문에서 나온 사람이 적었다. 박창진과 유선영, 그리고 박아윤 뿐이었다. 지난 며칠간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아온 덕에 박아윤은 번호표까지 특별히 만들었다. 혹시 새치기 등으로 인해 식사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나빠질까 봐 번호표를 작성했다. “대표님, 오늘 또 오셨네요.” 박아윤은 준비를 마치고 의자를 세팅하다가 강민건을 보았다. 그가 이 공사장 대표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박아윤의 태도가 훨씬 좋아졌다. 강민건은 줄곧 박아윤의 팔을 주시했다. 마음 같아선 그녀의 소매가 저절로 구멍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반값에 해드릴게요!” 180도 바뀐 태도, 어제까지만 해도 2만 원이라고 하던 그녀가 오늘은 달랑 2천 원만 달라고 한다. 정말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강민건이 입을 열었다. “할인 필요 없어. 원래대로 2만 원 받고 있는 음식 대충 내오면 돼.” 그는 말하면서 지폐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박아윤은 망설임 없이 돈을 옷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빠, 대표님께 닭다리 하나 더 추가해 주세요! 제일 큰 거로다가! 대표님, 앞으로도 자주 와주세요.” 박아윤은 테이블을 손으로 짚고 강민건에게 다가가 살짝 웃었다. 강민건은 시선을 올리고 그 미소를 바라본 순간,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늘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던 귀요미도 웃으면 아마 이런 모습이겠지. 그는 왠지 모르게 심장이 쿵쾅댔다. “왜 자주 오라는 거야?” 강민건이 헛기침을 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대표님이 워낙 돈을 많이 주시잖아요.” 박아윤은 2만 원 지폐를 꺼내서 손가락으로 튕겼다. “...” “그런데 대표님은 이렇게 땅도 많고 돈도 많으니 집에 전담 영양팀도 두고 있죠?” 둘이 처음 만났을 때, 강민건은 외제 차에 기사까지 뒀었다. 한편 강민건이 고개를 살짝 들고 답했다. “산해진미에 질렸어. 가끔 입맛을 바꾸고 싶고 게다가 아윤 씨 솜씨도 좋잖아. 또 이렇게 옆에서 수다도 떨어주니 꽤 재미있는걸.” 하여튼 부자들은 힘들게 돈을 버는 가난한 사람을 놀잇감으로 삼는 법이었다. 다만 박아윤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귀한 손님이니까. 이곳에서 내쫓지도 않고 선뜻 호구가 되어주니 다른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요. 그럼 앞으로도 자주 오세요. 20% 할인해서 1만6천 원만 받을게요.” 강민건이 웃었다. 20% 할인을 재정의하는 그녀, 독특하고 어디에도 굴하지 않는 그녀의 처사가 귀요미랑 똑같았다. “아빠, 정우 오빠, 저 대표님 좀 이상해요. 항상 여기 와서 음식 드시고 종일 빈둥거리는 것 같아요. 일은 전혀 안 하시나 봐요?” 박창진이 겸연쩍게 웃었다. 강민건은 대체 무슨 속셈인 걸까? 연 며칠을 이곳에 오다니. “그분 도시락.” 박창진은 도시락 1인분을 박아윤에게 건넸다. “가서 전해줘. 살짝 비정상적인 것 같으니 전해주고 바로 돌아와. 너무 많이 접촉하지 말고.” 박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돈 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 시각 임지효도 차를 몰고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한눈에 강민건을 알아보고 핸들을 꽉 잡았다. “역시! 박아윤 의심하기 시작했어! 이대로 놔둘 순 없어. 민건 오빠 와이프는 나야. 무조건 나여야만 해!” 박아윤이 도시락을 들고 강민건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더 큰 사업 계획을 짜고 있었고 강민건은 그녀의 팔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으악!” 한순간 방심한 박아윤이 발을 헛디뎌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강민건이 재빨리 달려와 그녀를 붙잡았다. 박아윤은 긴장한 채 도시락을 들고 강민건의 품에 살짝 기댔다. 이때다 싶어 강민건이 과감하게 그녀의 오른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임지효는 허둥지둥 차 문을 열고 사색이 된 채 이리로 달려왔다. 순간, 강민건과 임지효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강민건은 박아윤의 오른팔 안쪽을 뚫어지라 응시하더니 충격에 휩싸였다. 짝... 곧이어 박창진이 박아윤을 끌어당기며 강민건의 뺨을 때렸다. “무슨 짓이야!” 강민건은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넋이 나간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윤이가 아니라고? 그럼 대체 누구야?” 임지효는 박아윤의 매끈한 팔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애써 아픔을 참으며 소매를 걷어 올려 흉터를 일부러 드러냈다. 이어서 강민건의 눈에 띄도록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언니, 괜찮아? 우연히 지나가다가 봤어. 저번엔 괜히 나 때문에 오해만 사서 미안해. 언니 넘어질 뻔하다가 다행히 민건 오빠가 잡아줬네. 하마터면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서 큰 흉터라도 남을 뻔했잖아!” 임지효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잘 짜인 연극처럼 오버스러웠다. 강민건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임지효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정색하며 쏘아붙였다. “그 팔 흉터는 대체 어디서 생긴 거야?” 임지효는 기다렸다는 듯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강민건이 너무 세게 잡다 보니 그녀는 아픈 듯 신음하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민건 오빠, 아파요.” “말해.” 강민건의 눈썹을 치키며 계속 다그쳤다. “어릴 때 부주의로 다친 거예요. 왜요?” 임지효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강민건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설마 날 구해준 사람이 임지효라고? 하지만 박아윤이 바로 내 기억 속의 귀요미였는데...’ 강민건이 깊은 생각에 잠기자 임지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토록 위험한 도박을 건 보람이 있었다. “민건 오빠?” 그녀가 다시 나지막이 불렀다. 강민건은 정신을 차리고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괜찮아. 아무 일 아니야.” 이때 박아윤이 임지효의 팔을 곁눈질로 보았는데 실로 흥미로웠다. 그녀의 팔에도 똑같은 흉터가 나 있었으니까. “괜찮아, 아윤아?” 강민건이 물었다. 그는 박창진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박아윤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대표님. 정말 고마워요. 하마터면 지효 말대로 넘어져서 큰 흉터가 남을 뻔했네요.” “아윤아! 우리 아윤이 괜찮아?” 유선영은 시력이 좋지 않아 소리를 따라 더듬거리며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다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제대로 못 봐줘서...” 유선영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박아윤은 그런 엄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괜찮아요, 엄마. 보세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엄마처럼 여전히 예쁜걸요.” 유선영은 비로소 안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조심해야 해.” “네가 왜 여기 있어?” 뭇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고 임지효의 얼굴에도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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