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남자는 격하게 저항하며 박아윤을 밀쳐냈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갑고 가라앉았다.
박아윤은 그가 이렇게까지 힘이 센 줄 몰랐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침대 모서리에 등이 부딪혔고 극심한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신을 차린 후, 그녀는 다시 일어나 박유하를 부축하려 했다.
그녀 또한 짜증이 나서 그대로 박유하가 뻗은 손을 짓누르고 뒤에서 그를 번쩍 안아 침대에 앉혔다.
박유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여자가 바로 금방 집에 돌아온 여동생일 거란 짐작은 했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박유하는 자고 있지 않았다. 다만 내려가지 않았을 뿐이다.
임지효가 떠날 때, 그를 짐짝 같은 폐인이라고 욕했었다. 이제 더는 낯선 사람에게 조롱당하고 싶지 않았다.
박아윤이 가족들에게 선물을 드릴 때도 엿듣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몫은 없었다. 무관심과 냉소적인 이 기분.
역시 모두가 폐인을 싫어했다.
눈앞에 나타난 작고 검은 그림자를 보았는데 키 167에 마른 체형이었다. 평소 가족들이 그를 부축하려 해도 힘이 적잖게 들 텐데 박아윤은 대체 어떻게 해낸 걸까?
“어디가 아픈지 저한테 말해주세요.”
그녀가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박유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모욕감을 느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침대를 쾅쾅 치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누가 들어오래? 당장 나가!”
박아윤은 알겠다며 대답만 할 뿐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 걸음 더 다가가 그의 다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여기 아파요?”
박유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한편 그녀는 오빠가 반응이 없자 다른 곳을 눌렀다.
“여기는요?”
박유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뭐 하는 거야? 나가라는 말 안 들려?”
박아윤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난 임지효가 아니에요. 비위 맞춰줄 생각 없으니까 어디가 아픈지만 말해줘요. 괜히 매일 밤 신음 때문에 깨나고 싶지 않으니까.”
박유하가 화나서 씩씩거렸다.
“아래층에서 마냥 얌전한 척하더니 이제 가면 벗은 거야?”
박아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안 자고 있었네요!”
제대로 들켜버린 박유하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박아윤은 더는 그에게 따져 묻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그의 다리를 주물렀다. 박유하는 가끔 움찔거리다가 또 가끔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근육이 반응한다는 것은 좋은 신호였다. 아직 괴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니까.
이건 단지 중독된 상태였다.
박아윤은 잠시 침묵하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손에 사탕 상자가 들려 있었다.
“자, 이거 아플 때마다 한 알씩 드세요. 아니면 조금이라도 불편하다면 바로 드세요. 통증을 완화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거예요.”
“그냥 수면제 주지 그랬냐.”
박유하가 시큰둥하게 쏘아붙이자 그녀가 힐끗 쳐다보았다.
“그럼 잠자코 있던가요. 짜증 나면 진짜 수면제 먹일지도 모르니까.”
말을 마친 그녀는 사탕을 침대에 던지고는 그대로 나갔다.
박유하는 분노로 이불을 질끈 씹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뛰쳐나가서 박아윤이 착한 척 연기하는 거라고 모두에게 일러바치고 싶었다.
이 여자도 임지효처럼 모질고 사나운 애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는 분풀이라도 하듯 사탕을 쏟아내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독약처럼 먹어서 박아윤의 사악함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놀랍게도 침대에 쓰러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리의 통증이 사라지고 허리도 시큰거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졸음이 마구 몰려왔다...
다음 날, 박아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작은 배낭을 챙겨서 밖에 나가려 했다.
그녀는 박유하와 유선영을 위해 의사를 찾아주고 또한 약재도 몇 가지 사야 했다.
이 가족은 심한 피로에 시달리거나 중독 상태였다. 무엇보다 몸을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돈을 버는 자본은 곧 건강이니까.
박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도 아침 일찍 깨어났다가 그녀가 나가려는 걸 보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박서준이 선뜻 앞으로 다가왔다.
“아윤아, 이렇게 일찍 어디 가?”
박아윤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경운시요.”
박동하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것 봐, 내가 말했잖아. 지효처럼 고생을 못 견딘다니까.’
박창진과 박정우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마음이 꽤 무거워 보였다.
박아윤이 말을 이었다.
“유하 오빠 다리가 너무 아프대요. 경운시에 괜찮은 의사 선생님 한 분 알고 있거든요. 그분 모셔 올게요. 그리고 또 돈 벌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엄마 눈도 치료해야 하잖아요. 계속 앞을 못 보면 안 되니까. 아 참, 다들 필요한 물건 있어요? 혹은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하세요. 이따 돌아올 때 사다 드릴게요.”
그녀가 고개를 들자 모두가 입이 쩍 벌어진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의 동생 아윤이가 개미처럼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정작 이들은 그녀의 인품이나 의심하고 있었다.
박아윤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박정우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실은 나 차 있어. 오늘 마침 경운시에 갈 건데 데려다줄까?”
박서준도 덧붙였다.
“나도...”
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박정우가 눈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박아윤은 신나서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정우 오빠.”
박정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밥부터 먹자. 차 있으니까 급할 거 없어.”
박유하의 다리는 지난 수년간 여러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박씨 가문조차 해낼 수 없는 일이니 박아윤에게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생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도 아니다. 동생이 가족들에게 잘해주려는 건 좋은 마음이니까.
박정우는 밥을 먹는 틈을 타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백화점에 미혼 여성 고객들을 위한 무료 행사 진행해.]
가족들은 박아윤의 사이즈를 몰라서 기본적인 옷만 몇 벌 준비해 놓았다.
결국 지금 입고 내려온 옷도 사이즈가 약간 컸다.
그에 비해 임지효는 옷장에 옷이 가득했다.
박창진은 떠나기 전, 박아윤에게 카드를 건네주었다.
“아윤아, 이건 집에서 모아둔 돈이야.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사서 써. 스스로 속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 알겠지?”
박아윤은 카드를 힐긋 내려다보았는데 웬걸, 슈퍼리치 VIP라니.
그녀는 입술을 씰룩이며 묵묵히 카드를 받았다.
“네, 그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