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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그녀가 넋을 잃은 사이 머리 위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회되면 지금이라도 포기해. 온갖 소란 피우고 다시 매달리는 건 너무 쪽팔리잖아.” 최지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온 이상, 스스로 후회할 틈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창피함을 용기라고 생각하면 그건 진짜 바보짓이야.” 옆에 있는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리자 웃음기 어린 눈가에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숨어 있었다. 심연 같은 눈동자에 언뜻 스친 건 웃음인지 분노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갔다. 최지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괜히 찔렸다. “후회 안 해요.” 강도윤이 그녀를 힐긋 쳐다보았다. “그러면 다행이고. 눈 한 번 삐끗한 건 봐줄 수 있는데, 머리 나쁜 건 진짜 답이 없거든.” 최지은은 말문이 막혔다. 차 앞에 도착했을 때 강도윤이 대신 문을 열어줬다. 우아한 몸짓과 신사적인 태도는 조금 전 느닷 없이 독설을 퍼붓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출발까지 아직 3시간 남았으니까 밥 좀 먹고 가자.” 최지은은 얌전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레스토랑.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았고, 남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건넸다. 그녀도 사양하지 않고 제일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하나 골라 주문했다. 메뉴판 없이 주문을 마친 강도윤은 와인 한 병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최지은은 곧바로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망설였지만 끝내 말리지는 않았다. 오늘 같은 날 술이 빠지면 섭섭하긴 했다. 주량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한두 잔 정도는 마셔도 괜찮았다. 음식들이 하나둘씩 오르기 시작했다. 강도윤이 주문한 와인도 이미 잘 디캔팅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앞에 두고 정작 술은 따라주지 않았다. 그녀를 철저히 무시한 채 혼자서 스테이크를 느긋하게 썰며 와인까지 야무지게 즐겼다. 남자의 속내를 당최 알 길이 없었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먼저 술을 달라고 하기는 싫었다. 결국 고개를 박고 묵묵히 접시에 담긴 음식만 먹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맞은편에서 낮게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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