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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최지은은 별장을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내놓았기 때문에 이내 그 별장을 사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그 사람들에게 전부 답장을 보내고 나니 깊은 밤이 되었다. 잠이 전혀 오지 않았던 최지은은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앱을 켰다. 앱을 클릭하자마자 추천 게시글이 하나 떠서 최지은의 이목을 끌었다. [결혼을 두 달 앞둔 남자 친구와 오늘 웨딩샵에서 남자 친구와 결혼할 예비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랑을 나눴어요. 정말 너무 자극적이고 좋았어요.] 그 게시글 아래는 욕설이 난무했다. 그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디 그 남자의 예비 신부가 이 게시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최지은은 흠칫하며 게시글 주인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그녀는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 해 내려보았는데 글은 없고 사진 한 장만 있었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깍지를 끼고 있었다. 최지은은 단번에 남자의 검지에 있는 작은 점과 약지에 낀 반지를 보았다. 그 게시물은 반년 전 올라온 게시물이었고 한수혁이 그녀에게 프러포즈했던 날과 겨우 일주일 차이였다. 최지은은 휴대전화를 든 채로 자신의 약지에 있는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역겨움을 느꼈다. 다음 순간, 최지은은 반지를 빼서 변기 속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이미 더럽혀진 것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잠시 후, 게시자가 새 게시물을 올렸다. 그녀는 예전처럼 의기양양하지 않고 가련한 척 말했다. [다들 그만 욕하세요. 전 제 남자 친구랑 약속했어요. 한 달 뒤 그 예비 신부에게 제 남자 친구를 온전히 돌려줄 거라고요.] 그러면서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찍어서 올렸다. 너무도 익숙한 뒷모습에 최지은은 당황했다. 온전히 돌려줄 거라니. ‘참나.’ 그 순간 최지은은 사람이 기가 막히면 헛웃음이 나온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한수혁은 밤새 돌아오지 않다가 아침에 그녀에게 연락해 웨딩샵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다른 설명은 하지도 않았다. 최지은은 한수혁보다 몇 분 일찍 도착했다. 최지은의 웨딩드레스는 3층 VIP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더럽혀진 적 없이 아주 단정하고 성스러워 보였다. “최지은 님, 한수혁 님께서 지금 오고 계신다고 합니다. 우선 웨딩드레스를 착용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한수혁 님께서 도착하시면 바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예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잖아요.” 직원은 아주 정중하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서 약간의 연민이 느껴졌다. 최지은은 차가운 얼굴로 거절했다. “됐어요.” 너무 역겨웠다. 최지은이 말을 마치자마자 큰 손이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내 익숙한 숨결과 바디워시의 시원한 향이 최지은의 코끝을 스쳤다. “왜 안 입어? 지은아,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날 위해서 한 번 입어주면 안 돼?” 최지은은 시선을 돌려 밤새 야근한 사람답지 않게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한수혁을 바라보며 속으로 냉소했다. 한수혁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그의 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여자 한 명이 있었다. 그 여자는 청바지에 심플한 흰 셔츠를 입고서 미소 짓고 있었는데 풋풋하고 순진해 보였다. 최지은은 한수혁이 아닌 그의 뒤에 서 있는 여자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것도 그들의 자극적인 놀이를 위한 것일까? 최지은의 눈빛을 의식한 한수혁은 최지은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협력사 쪽 직원이야. 몇 년 전의 너랑 성격이 비슷하길래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데려왔어.” 한수혁은 여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여자는 기뻐하며 달려와 최지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지은 언니. 저는 진서연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최지은은 진서연과 악수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어들여 더는 진서연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는 덤덤히 말했다. “서연이? 예쁜 이름이네. 너 같은 애라면 수많은 남자들이 꿈처럼 짧은 순간에 취해 마음을 다잡지 못하겠지?” 최지은의 조롱을 눈치챈 진서연은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가 남자를 홀리고 다닌다는 말씀인가요?” 최지은의 허리를 잡고 있던 한수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최지은은 시선을 돌려 옆에서 언짢은 표정을 한 한수혁을 바라보았고 한수혁은 그제야 손에 힘을 풀며 최지은에게 몸을 바짝 붙이면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뭐 화가 나는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집에 돌아가서 나한테 화 풀어. 이렇게 대놓고 뭐라고 하면 쟤도 창피할 거 아니야. 일단 웨딩드레스부터 입어 보자.” 직원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린 뒤 웨딩드레스를 가져와 최지은에게 입히려고 했다. 최지은은 진서연을 바라보았다. 진서연은 미묘한 눈빛으로 직원이 들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지은은 싸늘한 눈빛을 한 채 말했다. “마음에 들어?” 진서연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네.” 진서연은 그렇게 대답한 뒤 조심스럽게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한수혁이 차가운 눈빛을 해 보이자 진서연은 살짝 겁먹은 얼굴로 부러운 듯 말을 보탰다. “모든 여자가 다 지은 언니처럼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지는 않으니까요.” 진서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대놓고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슬퍼했다. 최지은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한수혁을 바라보다가 덤덤한 목소리로 직원에게 말했다. “전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움직이고 싶지 않네요. 아까 보니까 서연이가 나랑 몸매가 비슷하던데 서연이한테 입혀주세요.” 두 사람 때문에 더럽혀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다가 병이라도 옮을까 봐 걱정됐다. 직원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한수혁을 바라보았고 한수혁은 시선을 내려뜨린 채 굳은 표정으로 최지은을 응시했다. 진서연은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해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좋아요. 지은 언니를 대신해 웨딩드레스를 입어볼 수 있다니 저 너무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진서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어 웨딩드레스를 만졌다. “...” 직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한수혁의 어두운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는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해 보였다. 진서연은 입술을 깨물면서 안절부절못했고 최지은은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는 한수혁의 손을 치운 뒤 옆에 있는 소파에 앉으면서 재촉했다. “어서 입어봐.” 진서연은 그제야 다시 미소를 지으며 직원에게서 웨딩드레스를 받아 들고 탈의실로 걸어갔다. 한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최지은의 옆에 앉았다. 그가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내자 최지은이 시선을 들어 한수혁을 바라보면서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가 들어가서 도와줘야지.” 최지은의 말에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어제 한수혁과 진서연을 상대했었던 직원들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오늘 휴가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흥미로운 일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한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술을 꾹 다물고 경계하듯 말했다. “지은아, 그게 무슨 말이야?” “별거 아니야. 난 자기가 아주 흔쾌히 도와주려고 할 줄 알았지.” 최지은은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직원에게 커피 한 잔 달라고 했다. 탈의실의 거대한 커튼이 쳐지면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진서연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중앙에 서서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지은을 위해 맞춤 제작된 웨딩드레스인데 어쩐지 진서연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최지은은 시선을 돌려 한수혁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웃음기가 어려 있지만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예뻐?” 한수혁은 진서연을 바라보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지은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최지은은 대답하지 않고 커피잔을 들고 진서연 쪽으로 걸어갔다. 최지은이 가까이 오자 진서연은 황급히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최지은이 자신의 얼굴에 커피를 부으려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얼굴에서 화끈거리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주변에서 깜짝 놀라며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내린 진서연은 고개를 숙인 뒤에야 자신이 입고 있는 값비싼 웨딩드레스가 커피 때문에 더러워진 걸 발견했다. 직원은 황급히 티슈로 얼룩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최지은은 무표정한 얼굴로 진서연을 바라보면서 냉소를 흘렸다. “이미 더러워져서 깨끗해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나한테 온전히 돌려주겠다는 거지?” 진서연은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했다. 한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어두워진 얼굴로 다가가 최지은의 손목을 잡고 그녀와 함께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그 순간 최지은이 한수혁의 뺨을 때렸다. 짝 소리와 함께 그곳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온몸의 힘을 다하여 뺨을 때려서인지 최지은은 손바닥이 심하게 저렸다. 한수혁은 어두워진 얼굴로 최지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했다. 웨딩샵 직원들은 한수혁의 얼굴을 감히 쳐다볼 수가 없었고 심지어 진서연도 감히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했다. 최지은은 남자의 날 선 눈빛을 보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남자와 여자는 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만약 한수혁이 그녀를 때린다면 그를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한수혁은 시선을 내려뜨려 파르르 떨리는 최지은의 속눈썹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화풀이 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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