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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다시 눈을 떴을 때, 서고은은 간호사의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왜 아무도 곁을 안 지키고 있었어요? 주삿바늘에 피가 역류했잖아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서고은은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손등이 퉁퉁 부어 있는 게 보였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이미 일곱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이시현은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환자분, 그 잘생긴 남자 친구분은요?” 간호사가 약을 갈며 물었다. “주사 맞을 땐 누가 곁에 있어 줘야 해요. 아까 정말 위험했어요.” 서고은은 입꼬리를 조금 올리며 말했다. “그 사람 제 남자 친구 아니에요.” 혼자 벽을 짚고 서고은은 천천히 병실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복도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이 바늘처럼 귀를 찔렀다. “임단비 씨 진짜 복도 많네요. 의붓아버지는 저렇게 잘해주지, 남자 친구는 또 저렇게 잘생겼지.” “그 남자 친구가 VIP 병동 한 층을 통으로 잡았다던데요? 해외 전문의까지 불러 하루 종일 붙어 있었대요. 의붓아버지랑 남자 친구가 같이 떠받들어주니 그야말로 공주 대접이 따로 없죠. 임단비 씨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분명해요...” 서고은은 자신도 모르게 그 병실 앞에 멈춰 섰다. 살짝 열린 문틈 너머로 이시현은 허리를 숙여 임단비의 수액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길고 가지런한 손가락이 조절기를 부드럽게 돌리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서동수가 앉아서 임단비를 위해 사과를 깎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껍질이 한 줄로 늘어졌고 그는 사과를 한 조각씩 직접 그녀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서고은은 숨이 갑자기 막혔다. 눈물이 아무 예고도 없이 흘러내려 뜨겁게 뺨을 적셨다. 급히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서고은은 텅 빈 복도를 향해 아주 작게 속삭였다. “서고은. 누구를 위해 우는 거야?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울지 마.” 몸을 돌리며 서고은은 허리를 곧게 폈고 걸음은 빠르고 단단했다. 오직 주먹을 쥔 손바닥에서만 핏방울이 조금씩 스며 나올 뿐이었다. 그 뒤 며칠 동안, 이시현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퇴원하는 날이 되어서야 서고은은 병원 정문 앞에서 그 익숙한 검은색 마이바흐를 보았다. 차창이 내려가고 이시현의 윤곽이 또렷한 옆얼굴이 드러났다. “타.” 여전히 냉담한 목소리였다. 서고은이 돌아서서 걸어가 버리자 이시현이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내가 너를 끌어서 올라타게 해야겠어?” 그 말에 서고은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이시현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 예전에 이시현은 서고은을 ‘교육’한답시고 종종 이런 식으로 위협했었다. 그녀는 그걸 장난이나 은근한 희롱 정도로 여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시현의 첫사랑까지 돌아왔는데 이시현은 무슨 자격으로 아직도 이렇게 구는 거지?’ 서고은은 이를 악물고 차에 올랐다. 이시현은 그녀에게 경매 카탈로그 한 권을 건넸다. “요즘 기분 안 좋아 보이더라. 예전에 쇼핑하는 거 좋아하지 않았어? 오늘 같이 경매장에 갈 거야.” 서고은은 거절하려다가 한 페이지에서 손이 멈추며 동공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엄마의 진주 목걸이였다. 임수연이 집에 들어온 뒤, 악몽을 꾼다는 핑계로 서동수는 엄마의 유품을 전부 치워버렸다. 서고은이 울며 매달렸지만 돌아온 말은 단 하나였다. “사람도 죽었는데 유품 남겨두면 재수 없는 일만 생겨.” 그 목걸이를 이런 곳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서고은은 카탈로그를 꽉 움켜쥐었고 종이는 손바닥 안에서 구겨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개인 변호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당장 은행 보관함에 있는 모든 예단을 전부 팔아주세요.] 그 목걸이를 위해서라면 시집갈 때 예단이 없어 비웃음을 사도 괜찮았다. 경매장은 눈부시게 화려했다. 이시현을 따라 VIP 구역으로 들어가자마자 서고은은 예약석에 앉아 있는 임단비를 한눈에 알아봤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달콤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언니!” 임단비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가 언니한테 경매에서 꼭 사과하고 싶다고 했더니 시현 오빠가 정말로 언니를 데려와 줄 줄은 몰랐어요.” 눈을 깜박이며 임단비가 말을 이었다. “두 분 진짜 사이좋아 보이네요.” 서고은의 몸이 굳어버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시현을 바라봤다. 이시현은 고개를 숙인 채 경매 카탈로그를 넘기고 있었다. 조명 아래 이시현의 옆얼굴은 조각처럼 완벽했지만 서고은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이시현은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데려온 게 아니었어. 단지 임단비가 나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마침 오는 길에 나를 하나의 도구처럼 데려왔을 뿐이었네.’ 이상하게도 예상했던 통증은 찾아오지 않았다. 가슴 한가운데가 마치 무언가를 도려내 간 듯 텅 빈 느낌이었지만 이미 아무런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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