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서고은은 얼굴에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등을 곧게 세우고 시선을 앞의 경매 단상에 고정했다.
경매가 중반에 접어들 때까지도 서고은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경매사가 벨벳 트레이 위를 덮고 있던 붉은 천을 들어 올리는 순간,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그 진주 목걸이가 부드럽고 따뜻한 광택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서고은의 동공이 순식간에 수축하며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늘 이 목걸이를 하고 파티에 나가곤 했다. 가늘고 우아한 목선에 밀착된 진주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짝 흔들리며 마치 온화한 달빛처럼 반짝였다.
“그렇게 마음에 들어?”
귓가에서 이시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고은은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패널을 들었다.
“100억.”
“120억.”
옆자리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임단비가 서고은을 향해 미소 지었다.
“언니, 나도 이 목걸이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경매는 비싼 값을 부르는 사람이 가져가는 거잖아요. 괜찮죠?”
서고은은 주먹을 꽉 쥐었다.
“160억.”
“200억.”
“400억.”
“600억.”
가격은 끝없이 뛰어 마침내 2천억 원에 이르렀다.
예단을 처분해 마련한 돈은 이미 바닥이 났지만 임단비는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확신에 찬 미소를 띠고 패널을 들고 있었다.
“여기 600억 원이요.”
경매사가 서고은을 바라봤다.
“서고은 씨, 추가 입찰하시겠습니까?”
서고은의 목구멍이 바짝 말랐다.
살면서 한 번도 목걸이 하나 때문에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게 될 줄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네.”
그녀는 힘겹게 그 말을 내뱉고 몸을 돌려 이시현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시현, 돈 좀 빌려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우리 엄마 유품이야. 나는 이걸 꼭 가져야 해.”
이시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늘 자존심 강하고 눈부시던 서고은이 이렇게까지 자세를 낮추고 말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부탁할게.”
서고은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의 귀에만 닿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이시현의 손이 재킷 안주머니로 향했다.
“시현 오빠, 잠깐만요.”
그가 막 블랙카드를 꺼내려는 순간, 임단비가 갑자기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나는 이 목걸이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좋아하게 된 물건은 처음이에요.”
입술을 깨물며 임단비가 애원했다.
“이번엔 언니를 안 도와주면 안 될까요?”
공기가 얼어붙은 듯 정적이 흘렀다.
서고은은 이시현을 바라봤다. 한때 그녀를 위해 비바람을 막아주던 그 남자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시현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며 시선은 서고은과 임단비 사이를 오갔다.
길고 긴 침묵 끝에 이시현은 마침내 서고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단비에게 양보해.”
너무도 가볍게 내뱉어진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칼날처럼 서고은의 심장을 꿰뚫었다.
“탕탕탕! 낙찰되었습니다! 임단비 씨, 축하합니다!”
서고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임단비가 목걸이를 받아 드는 모습, 승자의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는 얼굴이 눈앞에서 또렷하게 보였다.
서고은의 손톱은 깊숙이 손바닥을 파고들었고 피가 손가락 사이로 떨어져 카펫 위에 스며들었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시현은 이런 서고은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됐지만 끝내 눈물은 흘리지 않았고 입술은 창백하도록 깨물렸지만 등은 꼿꼿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시현의 가슴 한구석이 알 수 없이 시큰거렸다.
“시현 오빠...”
임단비가 힘없이 그에게 몸을 기댔다.
“생리 기간이라 좀 힘들어요. 담요 하나만 가져다줄 수 있어요?”
이시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고은은 더 이상 경매를 볼 마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자리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동안,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눈앞에는 끊임없이 엄마가 그 목걸이를 하고 미소 짓던 모습이 떠올랐다.
경매가 끝나자마자 서고은은 임단비를 가로막았다.
“목걸이, 나한테 팔아.”
서고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조건은 뭐든지 좋아.”
작게 웃으며 임단비가 말했다.
“정말 뭐든지요? 그럼 무릎을 꿇으라면요?”
서고은의 온몸이 떨렸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그녀 손을 꼭 잡고 남긴 말이 떠올랐다.
‘고은아, 무슨 일이 있어도 자존심을 잃고 살지는 마.’
하지만 지금의 서고은은 목걸이 하나를 위해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리려 하고 있었다.
“좋아.”
이를 악물고 겨우 짜내듯 서고은은 그 말을 내뱉었다. 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그만둬요.”
그때 임단비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언니가 무릎 꿇어도 소용없어요. 그 하찮은 목걸이를 벌써 길가의 들개한테 던져줬거든요.”
임단비는 휴대폰을 꺼내 몇 번 화면을 넘겼다. 화면에는 때가 덕지덕지 묻은 유기견 한 마리가 있었고 목에는 진흙에 얼룩진 그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당신 엄마 목걸이는 원래 개 목에 걸리는 게 가장 어울려요.”
그녀는 서고은의 귀에 바짝 다가와 한 글자씩 또박또박 속삭였다.
“나쁜 년과 하찮은 개는 천생연분이니까요.”
서고은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귀에서는 굉음이 울리는 듯했고 마치 누군가가 쇠망치를 들고 그녀의 관자놀이를 내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임종 직전의 창백한 엄마 얼굴이 눈앞에 스쳤다. 한때는 우아하게 목에 걸려 있던 그 진주 목걸이가 지금은...
“방금 그 말, 다시 한번 해봐.”
서고은의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낮았다.
비웃으며 임단비가 말했다.
“나쁜 년과 하찮은 개는 천생연분이라고요. 못 들었어요?”
서고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눈동자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어느 손으로 던졌어?”
“이 손인데, 왜요?”
임단비가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설마...”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고은은 과일 접시 옆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임단비의 손바닥에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