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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서고은은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 이시현의 가슴속에서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막 입을 열려는 순간, 간호사가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시현 씨, 임단비 씨가 또 아프다고 하셔서요...” “너는 여기서 잘 반성하고 있어.” 이시현은 차갑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다시는 문제 일으키지 말고.” 그날 이후, 서고은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임단비는 서고은에게 매일 이시현이 그녀를 돌보는 사진을 보냈다. 그러나 서고은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서고은이 퇴원하는 날, 임단비가 직접 그녀의 병실로 찾아왔다. “언니는 사흘 만에 퇴원하네요.” 임단비는 붕대를 감은 오른손을 흔들었다. “이 칼 때문에 나는 얼마나 오래 입원해야 하는지 알아요? 시현 오빠가 해외에서 의료팀까지 불러오지 않았으면 내 손은 진짜 못 쓰게 됐을 거예요.” “그건 네가 자초한 거야.” 서고은은 냉정하게 말했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임단비가 대답했다. “서고은 씨, 당신은 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시현 오빠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그 사람 손으로 직접 구치소에 보내진 기분이 어때요? 죽고 싶을 만큼 아팠어요?” 서고은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별건 없어요.” 임단비는 침대 옆에 앉았다. “그냥 옛날얘기 하나 해주고 싶어서요. 그거 모르죠? 나랑 시현 오빠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그때 전교 여학생들이 다 오빠를 쫓아다녔는데 오빠는 눈길 한번 안 줬죠.” 그녀는 붕대를 쓸며 눈에 노골적인 우월감을 담았다. “나만 빼고요. 내가 마시는 커피는 항상 설탕을 빼주고, 비 오는 날엔 늘 우산 하나를 더 챙겨왔고, 동아리 행사에서는 항상 내가 건네는 물만 마셨죠. 전교생 앞에서 발표할 땐 늘 내가 앉아 있는 쪽만 봤고, 여자애들은 질투로 눈이 뒤집혔지만 오빠는 나한테만 웃어 줬어요. 우리가 곧 사귀기 직전이었을 때 내가 오빠를 구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래서 해외로 요양을 가야 했고. 하지만 그 후에도 우리는 계속 연락하며 지냈어요.” 서고은의 손끝이 손바닥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 내가 시현 오빠한테 말했죠. 우리 엄마가 재벌가에 시집갔는데 그 집에 있는 큰딸이 늘 나랑 엄마를 괴롭힌다고요.” 가볍게 웃으며 임단비가 말했다. “그랬더니 오빠가 당신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서고은을 오빠한테 맡기라고, 오빠가 직접 혼내주겠다고 했어요.” 서고은은 온몸이 떨려왔다. 그녀는 줄곧 아버지가 먼저 자신을 이시현에게 맡긴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도 오빠는 완벽했고 사람을 길들이는 데도 능숙했어요.” 임단비는 서고은의 귀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아무렇지 않게 당신이 오빠를 사랑하게 만들고 침대까지 끌어들였죠.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정말 화가 났어요. 근데 나중에 알게 됐어요. 오빠가 당신이랑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항상 CCTV 영상을 복사해 두었다는걸요.” 부드럽게 웃으며 임단비가 말을 이었다. “그 순간에 오빠의 진짜 의도를 깨달았죠. 서씨 가문의 서고은은 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잖아요. 만약 당신의 은밀한 영상이 내 손에 쥐어져 있다면 당신이 감히 어떻게 나를 괴롭히겠어요? 시현 오빠가 당신이랑 잔 건, 결국 그 영상들을 나에게 넘겨주기 위해서였을 거예요.” 임단비는 말을 마치고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서고은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병실을 나갔다. 서고은은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병원을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이씨 가문으로 향했다.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서고은은 짐승처럼 집안을 뒤졌다. 서재 서랍과 침실 금고에도 없었다. 마침내, 암실의 컴퓨터에서 암호가 걸린 폴더 하나를 발견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 서고은의 다리가 풀리며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화면 속에는 서고은과 이시현이 얽혀 있는 장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날짜별, 상황별로 너무도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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