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조하연은 꼬박 밤을 새워 쓰개치마를 완성했다.
눈같이 흰 여우 가죽에 정교한 자수까지 더해 화려하면서도 따뜻했다.
날이 밝자마자 그녀는 조연서의 교태전에 직접 가져왔다.
조연서는 거울 앞에 앉아 단장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 눈빛이 차가워졌다.
“연서가 어언 일로 왔느냐?”
“신첩이 중전마마께 문안드리옵니다.”
조하연이 예를 갖추었다.
“전하께서 신첩에게 중전마마를 위해 쓰개치마를 짓도록 명하시었사옵니다. 쓰개치마가 완성되어 올리고자 왔사옵니다.”
시녀가 쓰개치마를 받아 조연서에게 건넸다.
조연서는 가죽을 어루만지더니 표정이 문득 싸늘하게 굳었다.
“무릎 꿇어라.”
조하연이 멈칫했다.
“본궁이 무릎 꿇으라 명했다.”
조연서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겨우 며칠 숙빈이 되었다고 예의마저 잊었느냐?”
조하연은 잠시 침묵하더니 무릎을 꿇었다.
조연서는 그녀 앞으로 걸어와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조하연, 이 쓰개치마를 이토록 정성 들여 수놓은 것은 전하께서 이 쓰개치마를 보실 때마다 네가 떠오르게 하여 너의 처소에 자주 들르게 하려는 심보였겠지?”
조연서가 차갑게 웃었다.
“꿈 깨라. 전하께서 마음에 품은 여인은 오직 나뿐이다. 예전에 전하께서 나를 얼마나 아꼈는지 너도 알지 않으냐? 너를 맞이한 것도 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지. 나중에 주상전하가 되자마자 나를 중전으로 봉했고 넌 그저 숙빈 일 뿐이다. 아직도 네 주제를 모르는 것이냐?”
조하연은 고개를 숙였다.
“신첩 감히 그런 생각 없사옵니다.”
“감히 그럴 수 없다고?”
조연서가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내 보기엔 대담하기 짝이 없구나.”
그녀가 손을 놓고 궁인들에게 명했다.
“여봐라! 숙빈이 감히 중전에게 대들다니, 원한을 품고 불길한 생각을 한 것이 틀림없구나. 당장 잡아 묶어 곤장 스무 대를 치도록 하라! 이참에 후궁에 본보기를 보여줘야지.”
궁녀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며 주춤거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주상전하께서 비록 조연서를 중전으로 봉했으나 숙빈에게도 마냥 무정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손을 썼다면...
“왜 그러느냐?”
조연서의 목소리가 차갑고 날카로워졌다.
“이 중전의 말이 이제 쓸모없다는 것이냐? 너희들 잘 생각해보아라. 전하께서 진정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감히 이년을 위해 중전의 명을 거역하겠느냐?”
이 말에 담긴 협박의 의미가 너무나도 명백해서 궁인들은 몸을 떨었지만 더는 망설이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 조하연을 붙잡았다.
“숙빈마마!”
청하가 매우 놀라 얼굴색이 확 변하며 달려오려 했으나, 다른 궁녀들에게 붙잡혀 꼼짝도 못 했다.
조하연은 차가운 바닥에 강제로 엎드려졌고, 몽둥이가 그녀의 살을 세차게 내려치는 둔탁한 소리가 텅 빈 전각에 선명하게 울렸다.
첫 번째 곤장이 떨어지자 격통이 몰아쳤고, 그녀는 신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곤장이 내리칠 때마다 고통이 겹쳐지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고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그녀는 차가운 바닥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단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조금만 더 참자. 딱 다섯 날만 더 버티면 되니까... 정우 도령, 닷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몽둥이 소리와 청하의 울음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조하연이 정신을 완전히 잃기 전, 전각 밖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호령이 터져 나왔다.
“당장 멈춰라!”
곧이어 급하고도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색 곤룡포 자락이 그녀의 흐릿한 시야에 들어왔다.
소지헌이었다.
그는 큰 걸음으로 들어오더니 전각 안의 광경을 보고는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고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그는 몇 걸음에 달려가 곤장을 들고 있는 내시를 물리치고 몸을 숙여 조하연을 일으키려 했다. 그의 손에 축축하고 끈적한 느낌이 전해졌다.
피였다. 피가 그녀의 얇은 궁복을 적신 것이다.
“하연아!”
그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는 그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놀랍고 당황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간이 부었느냐? 감히 숙빈을 때리다니.”
조하연은 너무 아파 말을 할 수 없었고 간신히 눈을 살짝 떴다.
그때 위쪽에 앉아 있던 조연서가 갑자기 얼굴을 감싸 쥐고 억울한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전하! 신첩이 연서에게 벌을 내리라 명했나이다.”
소지헌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연서는 눈물을 머금은 채 바닥에 놓인 쓰개치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흐느꼈다.
“연서, 연서가 글쎄 신첩이 중전의 자리를 차지한 것을 질투한 나머지 이 쓰개치마 안에 바늘을 숨겨 신첩을 해치려 하였사옵니다. 다행히 시녀가 세심하여 미리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지금쯤이면 신첩은 이미 바늘에 찔렸을 것이옵니다. 전하, 원래 신첩은 이 일을 그저 넘어가려 했나이다. 하지만 앞으로 중전으로서 내명부를 통솔해야 하온데 만약 이러한 악행을 용납한다면 어떻게 아래 사람들이 복종하게 하고 후궁을 다스릴 수 있겠사옵니까?”
‘쓰개치마 속에 바늘이 숨겨졌다고?’
소지헌은 눈썹이 찌푸리며 바닥에 놓인 화려한 쓰개치마를 훑어보았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품 안에서 간신히 숨을 내쉬는 조하연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러했느냐?”
조하연의 시녀 청하가 마침내 붙잡힌 손을 뿌리치고 조하연에게 달려가며 울부짖었다.
“전하, 명찰하여 주시옵소서. 숙빈마마께서 밤을 새워 이 쓰개치마를 만드셨사옵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였고 세심하게 살폈사옵니다. 절대 바늘이 숨겨져 있을 리 없사옵니다. 중전마마께서, 중전마마께서 일부러 숙빈마마를 괴롭히려고 흠을 잡으신 것이옵니다.”
“청하야, 입 다물어라!”
조하연이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소지헌은 조연서의 눈물범벅이 된 모습과, 품속에 안은 조하연의 창백한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빛이 여러 번 흔들렸다.
결국 그는 조하연을 받치고 있던 손을 놓았다.
“겨우 종년 하나가 중전을 모함하는 것이냐?”
그의 목소리는 서리가 깔린 것처럼 차가웠다.
“끌어내어 죽을 때까지 곤장을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