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조하연은 휘몰아치는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조하연이 간신히 눈을 뜨니 자신이 매우 높은 곳에 있으며 두 손이 굵은 밧줄로 묶여 꼼짝달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곁에는 마찬가지로 화려한 궁복을 입고 얼굴빛이 새파래질 정도로 겁에 질린 조연서가 묶여있었다.
그들은... 성벽 꼭대기에 매달려 있었다.
성벽 아래는 횃불이 환하게 타올랐고 수많은 금위영이 삼엄하게 대열을 갖추고 서 있었다. 가장 앞에는 소지헌이 검은색 평상복 차림으로 소나무처럼 꼿꼿하게 서서 성벽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냉혹했으나 눈빛은 두 여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소지헌.”
성벽 다른 쪽에서 거칠고 미친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하연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초라하게 해진 용포를 입고 광기로 일그러진 남자를 보았다. 그는 전 세자 소지호였다.
등극을 위한 다툼에서 실패한 후 그는 줄곧 갇혀 지내고 있었는데 어쩌다 이 순간 탈출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너와 내가 이런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소지호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소지헌, 네가 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오늘 나 역시 네가 가장 아끼는 것을 영원히 잃게 하리라.”
그는 조하연과 조연서를 가리키며 두 눈에는 증오 어린 눈빛이 반작였다.
“이 두 여인 중 하나는 네가 사랑하는 중전이고 다른 하나는 너와 오랜 세월 함께하며 목숨 걸고 싸운 숙빈이다. 소지헌, 네가 예전에 나더러 어머니와 세자빈 중 하나를 고르라 했을 때처럼 오늘 나도 너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마.”
“둘 중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느니라. 나머지 하나는 내가 당장 이곳에서 밀어 떨어뜨려 뼈도 추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네놈은 평생 고통과 후회 속에서 살게 되겠지.”
“택해 봐라. 내 좋은 아우야, 네 마음속에 누가 더 소중한지 보여다오. 하하하하.”
성벽 아래는 죽은 듯 고요했고 오직 거센 바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소지헌의 얼굴은 횃불 빛 아래에서 섬뜩할 정도로 어두웠다. 그는 주먹을 꽉 쥐어 손등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그의 시선은 두 여인 사이를 오갔다.
조연서는 이미 공포에 질려 혼비백산한 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소리 질렀다.
“전하, 저를 구해주소서. 전하, 신첩은 너무 무섭나이다. 신첩은 죽을 수 없사옵니다. 전하.”
반면 조하연은 그저 아래를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덤덤했다. 두렵지도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마치 이 모든 일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듯 평온했다.
다만 가끔 그녀의 시선이 성벽 아래의 한 방향을 스쳐 지나갔는데 그곳은 궁 밖으로 나가는 길이자... 강남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했다.
소지헌의 시선은 마침내 조하연의 평온한 얼굴에 멈추었다.
그는 얼마 전 조하연에게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너를 한 번은 선택하리라.’
그는 가슴이 꽉 조여왔다.
조연서의 울음소리가 더욱 처절해졌다.
“전하. 전하께서는 저만 사랑한다고 하셨지 않았사옵니까? 영원히 저를 지켜주시겠다고 하셨나이다. 전하!”
소지헌은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그의 눈에는 두 눈에는 한 나라의 임금다운 단호하고 눈빛과 일말의 회피하는 기색이 남아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조하연은 늘 강인했고 잘 참아왔어. 이번에는 과인이 하연에게 빚지는 거로 하지. 다음번, 다음번에는 반드시...’
그는 손을 들어 성벽 위의 조연서를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는 쉬었으나 바람을 가르고 선명하게 전해졌다.
“과인은 중전을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