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그 순간 고하준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멀리서부터 약 올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영 형, 내가 잘못 본 거야? 드디어 솔로 탈출이야? 할머니께서 아시면 정말 기뻐하실 텐데!”
말을 마친 그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서, 우리 형수님 얼굴 한번 보여줘.”
하지만 나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완전히 놀라서 멍해졌다.
“세영이 아니야? 어, 어떻게... 너였어?”
내가 설명할 틈도 없이 주현성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거친 욕을 내뱉었다.
“이 미친년이, 감히 도우미까지 불렀어? 당장 이리 와! 안 그럼 너랑 너의 도우미들까지 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너무 긴장되어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다행히 그 남자가 내 팔을 붙잡아 자신의 품으로 살짝 끌어주었다.
단정치 못한 나의 옷차림을 본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나에게 걸쳐 주었다.
삼목 향에 스민 담배 냄새가 내 주위를 단단히 에워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은 나에게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순간 상황을 파악한 고하준은 주현성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 자식이! 너 지금 누구 앞에서 지껄이는 거야? 감히 누구를 건드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주현성을 발로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린 뒤 주먹과 발길질을 마구 퍼부었다.
고하준은 학교 다닐 때부터 담배를 피고 싸움을 일삼던 인물이었다. 주현성 같은 풋내기 따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주현성의 처절한 비명이 호텔 복도를 가득 메웠다.
우리 쪽에서 난 소음이 너무 커서 금세 호텔 경비원과 매니저가 달려왔다.
매니저가 경비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려던 참이었지만 나를 부축하고 있는 남자를 보자마자 즉시 행동을 멈추고 유달리 공손해졌다.
그 남자의 얼굴은 냉랭했고 금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은 유난히 날카로웠다.
그가 고하준에게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았기에 매니저와 경비원은 아무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주현성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그는 그제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하준아, 이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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